40대가 되면 달라지는 것들
중년의 시작은 40세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당연히 내게는 그 시기가 안 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41세가 되었고 나는 생각한다. 중년의 시작은 50세부터가 아닐까.
40세 여자 연예인들을 찾아봤다. 송혜교, 한가인, 한지민, 손예진, 이민정 등의 초미녀들과 나이가 같아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그래 40살은 아직 젊지 하며 손거울을 들어 내 얼굴을 봤다.
'누구냐 넌?'
40대 접어들면서 눈두덩이 지방이 꺼져서 눈이 퀭해졌다. 겹주름이 있던 왼쪽 눈의 겹주름은 더 두꺼워지고 쌍꺼풀이 있던 오른쪽 눈은 쌍꺼풀 위로 겹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생기를 앗아가 몇 년은 더 늙어 보이게 했다. 게다가 그로 인해 눈 뜨는 것에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 떠도 피로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의 당연함은 이제 끝난 것이다.
성형수술을 알아봤다. 지방이식 정도면 되지 않을까 했던 내 눈꺼풀은 절개형 쌍꺼풀 수술+지방이식까지 해야 하는 상태였다. 지금 수술을 한다 해도 10년 뒤엔 눈꺼풀이 늘어져 눈을 덮게 되면 살을 잘라내고 당기고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난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예쁘고 젊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딱 봐도 자연스럽지 못한 젊음과 예쁨이겠지.
다시 거울을 봤다. 아직은 내 얼굴을 떠나보낼 때가 아님을 알았다. 여전히 생기라고는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내 얼굴을 잃기 싫다. 그렇게 당연한 것들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틈이 조심씩 생겼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기보단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벌고 있었던 40세에 퇴사라는 결정을 한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누가 봐도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인정과 '그래도 된다'는 포기의 기술을 조금 겸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늙은 남자들을 보면(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90% 이상이 할아버지였다는 내 경험의 편견에 휩싸여 있음을 인정한다.) 그 행동만으로 자신 밖에 모르는 삶을 산 파렴치한으로 낙인찍으며 과연 그의 가족들은 어떤 처우를 받을지 내 맘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필요 이상으로 더 싫어했다. 계속 그런 사람을 싫어할 것이 분명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삶과 가족까지 멋대로 판단하는 일은 때려치우기로 했다. 길목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싫다 정도에서 생각을 멈추려고 한다.
취미 삼아하고 있는 뜨개질을 밤낮으로 미친 듯이 하다가 어느 순간 하기 싫다는 심정이 찾아오면 '뜨개질로 세계선수권대회 나갈 거냐'를 외치며 멈춘다.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 해야 만한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하는 것이 반드시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애쓰지 않는 삶을 표방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잘 먹는 일이 중요해졌다. 40세에 첨으로 생선조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장양념과 생선국물이 스며들어 달큼하고 짭조름하게 조려진 무를 내 손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나를 어른의 문턱에 한 발 내딛게 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팥을 잔뜩 불려놓고 내일은 생애 첫 단팥죽을 맛있게 만들어야겠다는 기대감으로 오늘을 즐겁게 보낸다.
그렇게 더 가벼워지고 단순해졌다. 40세에는 농후한 인간이 될 거라는 기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인생 어쩌면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변화가 퇴사 때문인지 아니면 40대가 되었기 때문인지는 나조차도 헷갈린다.
지난 나의 청춘의 시절이 미화되지 않는 걸 보면 어쩌면 내 노화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젊고 예쁜 얼굴은 어두웠고 날카롭고 억울했다. 거울 보기를 꺼리게 하는 지금의 생기 빠진 얼굴이 어쩐지 더 편안해 보인다. 이렇게 생선조림 하나에도 행복한 단순한 40대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