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사람의 귀여움 포인트는 다르다.
우리는 산책 중에 고양이를 발견하면 서로에게 '고양이다!'라고 알려주는데 남편이 찾아낸 어제의 '고양이다!' 주인공은 코에 먹물이 찍혀 있었다. 산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무엇보다 걷는 행위 자체에 큰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산책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귀여움을 반드시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지난주 첨벙첨벙 요란한 물소리에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휙 돌렸다. 주둥이는 하얗고 몸은 온통 검은 새 한 마리가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목욕을 한다. 다른 새들은 방파제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이 녀석은 뭐가 그리 찜찜했는지 엄청난 기세로 목욕을 한다.
그렇게 한참을 첨벙거리다 슬며시 방파제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올라 탈 자리가 영 없어 보인다. 부리로 한숨이 나오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다시 날개 사이사이를 씻어내는 척한다. 그리곤 물에 잠겨 찰방거려 아무도 올라서지 않던 방파제에 올라섰다가 역시 맘에 안 들었는지 에잇 다시 바다로 점프해서 또 씻는다. 귀여워.
런웨이를 걸어야 할 것 같이 시크하게 생긴 이 새는 이맘때쯤 눈에 띄는데 찾아보니 '물닭'이란다. 생김새가 닭을 닮아 그렇다는데 내 눈엔 오리에 가까워 보인다. 특수한 발바닥 구조로 맘만 먹으면 물 위를 달릴 수도 있단다. 귀여워.
지난주에는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를 봤다. 나는 이 개를 볼 때마다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유명한 시저 캔의 모델 품종이다.) 꽤나 다부진 체형을 가지고 있는데 가슴이 떡 벌어져 있고 단단하고 짧은 꼬리에는 언제나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이다.
안테나처럼 꼬리를 세우고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던 웨스티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오른쪽 계단에 앞 발 두 개를 척 걸치더니 고개를 쭉 빼고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야 너 저거 좀 봐봐 하는 것 처럼
반려인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직 웨스트의 귀여움에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곧이어 방한복을 입고 걸어오던 프렌치 불독이 몸을 뒤집어 바닥에 등을 비벼대는 무아지경의 액션을 선보인다.(아마도 맘에 드는 냄새를 찾은 듯)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소리 내어 웃을 때 주인은 창피했는지 얼른 개를 일으킨다. 하필이면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벤치 앞에서 그랬다.
나는 동물들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인간이지만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을 포착할 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목적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행동을 볼 때마다 이 조그만 털 뭉치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이 귀여움의 포인트다. 그들이 생각을 한다는 것. 그것은 15년 살다 떠난 우리 쫄랑이만큼이나 모든 생명들을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반면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귀여움 포인트는 다르다.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경우 귀여움 주가는 폭락한다. 오히려 무의식 중에 하는 언행들을 발견할 때 사람들은 귀엽다.
예를 들면 나는 쌍꺼풀 없이 눈두덩이가 통통한 남편의 오른쪽 눈을 귀여워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절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럼 분명 그 통통한 오른쪽 눈을 귀여운 척하는데 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 터지게 싸울 때 조차도 내가 남편의 오른쪽 눈두덩이를 보고 '뭐지 귀여운데?' 어이없어하며 화를 가라 앉친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이 사실은 우리가 헤어지게 되는 날 알려 줄 생각이다.
남편은 한 겨울에도 욕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샤워를 한다. 욕실에 들어간 지 꽤 되었는데 물소리가 나지 않아 몰래 훔쳐봤다. 그는 욕조에 등을 돌리고 걸쳐 앉아 조신하게 다리털을 면도기로 밀고 있었다. 귀. 엽. 잖. 아??
홀딱 벗은 중년 남자가 다리털 미는 건 오히려 흉측한 것에 가깝겠지만 덜 흉측하려고 다리털까지 밀고 있는 중년 남자는 어쩐지 귀여운 것이다. 샤워를 마친 그에게 나는 사실 훔쳐봤노라 고백했지만 귀여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귀여워 보이려고 귀여운 척을 하면 절대 귀엽지가 않다. 동물들은 귀여워 보이려고 귀여운 척을 하지 않으니 모든 행동이 귀여운 거다. 인생을 통틀어 몸소 깨달은 진리 하나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귀여운 것이 모든 것을 물리친다는 것. 귀여운 것이 최고이며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