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백수생활 4개월째

by 윤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죽고 싶다 생각했다. 남들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힘들 테지만 다들 나처럼 꾸준히 죽고 싶다 생각하며 일어났을까.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지난 날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잠들었던 지난 날들. 이젠 안녕.


이제 나는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내 치사량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온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를 보호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조짐이 보이면 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내게 뭐라 하는 사람도, 내가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 이 평화.


외출은 일주일에 1~2번 정도 주로 스타벅스에 가는 일이 전부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매일 저녁 남편과 산책하는 길과 겹쳐지지만 저녁이 아닌 낮시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운 겨울, 보랏빛의 까만 열매를 맺는 나무 위에는 작은 새들이 열매를 따먹느라 아주 짹짹짹 시끄럽고 분주하다. 어쩌면 열매 맛이 아주 별로지만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서 억지로 욕하면서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말이 많은데 어쩐지 신경질적인 짹짹짹.


삼색 고양이가 등을 한껏 구부리며 기지개를 켠다. 나를 발견하고도 피하지 않고 여유롭게 내 앞을 지나간다. 나는 좀 더 편하게 가시라고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다. 그리고 어여쁜 고양이에게 너무 예쁘시다고 엄지 척을 해준다.


어느새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깜짝 놀란다. 나는 겹으로 장미같이 흐드러지게 피는 동백꽃보다 종이꽃처럼 빚은 듯이 단정하게 피어나는 빨간 동백꽃이 좋다. 그것이 가장 흔한 종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거리엔 화려하게 피는 종들이 많기 때문에 단아한 동백꽃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사람들을 몰래 구경한다. 남편처럼 대놓고 구경하는 일은 창피하기 때문에 최대한 관심 없는 척한다.


어제 폭음해서 오늘 복국으로 해장했다는 아주머니가 지인 딸이 주폭이 있는 남편에게 얻어맞고 산다는 것을 듣고는 훔쳐 듣는 것을 멈추고 에어팟을 귀에 꽂았다. 남의 불행을 훔쳐듣고 싶지는 않다.


내 시선의 앞쪽에 앉은 어린 남자와 여자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로 손을 맞대고 박수를 치며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무슨 일인지 가서 물어보고 싶다. 로또라고 걸린 것일까 맘속으로 좋겠다고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내게 저토록 기쁜 일이 있었던가.


쪼그만 애들 3명이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매장 안을 뛰어다녔다. 나는 주의를 주지도 못할 거면서 째려봤다가 여자애랑 눈이 마주쳤고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이 경험은 전에 마트에서 카트 위에 꼭 김미수처럼 생긴 여자애가 날 이유 없이 째려봤는데 내가 먼저 눈을 돌린 상황을 생각하게 했다. 제길. 애한테도 난 진다.



보통 4시 30분에서 6시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 시간 하늘이 기가 막히게 예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이 시간대의 하늘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올해 하늘은 유난히 예뻤고 이 시간의 하늘이 이렇게 매일 아름답다는 것을 안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한껏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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