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venirs
이틀 전에 노트북 사이에서 윈도우 충돌이 일어났는지 내 폴더와 파일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어딘가로 옮겨졌는데 그곳을 내 계정과 드라이브 내에서 찾을 수 없고, 삼성 서비스 센터에선 데이터 복구와 같은 건 해줄 수 없다 하며
동네 센터에선 시스템 복구를 하였더니 주변에서 그럼 파일을 영영 못 찾는단 대답만 해주었다.
그래, 이틀 동안 아니라 믿었던 파일 복구를 아예 포기해야 했다.
사진들은 다행히, 우연히도, 그거 참 신기하게도? 외장하드에 다 옮겨 놨는데 문서들로 가득한 바탕화면에 있는 폴더들은 옮기지 않았다.
학번으로 저장되어 있는 폴더는 외장하드에 3학년까지의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
요즘 디지털 시대로 급변하면서 일본에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써 키보드로 타자를 잘 쓸 줄 모른다 하고 한국은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하트와 도형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휴대폰으론 이모티콘 들어가면 다 있는데 컴퓨터에서 뭐하러?
그런 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린, 기억을 잃을까 봐 다이어리나 노트에 적어놓는 일보다 작업한 내용과 그 과정을 혹시 모르니 컴퓨터/노트북에 다 저장하는 경우가 많다. 저 일기는 종이에 쓰는데요? 네네, 저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브런치나 블로그에 쓰기 위한 내용들을 바탕화면 폴더에 옮겨 놓고 하나로 묶고 분류해 놓을 때가 많잖아요. 더구나 저는 그걸 아주 체계적으로 해놓는 사람이었죠... 바탕화면에 폴더가 많은 건 보기 싫으니까요.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은,
대학을 졸업하고 근 3-4년간 일을 하든 아빠를 돕든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든 공부를 하면서 모았던 소스들이든 이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마치 그를 기록해 놓은 노트를 잊어 몇 년 후에 추억처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채로 잊어야 하고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 생활을 이어하지 않는 이상(절대 반대다) 내가 잃은 자료를 다시 백업할 일도 없을 것이다. 새로이.
그건 대학원 결정에도 마찬가지였다.
노트북 문제로 아빠와 전화하며 아빠는 왜 문서들을 백업하지 않았냐 물었지만 기껏 4년도 안 된 노트북을 백업하고자 아등바등할 일이 없었다 판단하였다.
보통 나에게 전조 증상을 보이면 내가 무서워서 백업하는 식이었는데 말이다.
이번엔 너무 급작스러웠고 예고도 없었다.
아빠가 말했다.
“뭐 이제 어쩔 수 없지. 다시 공부하면서, 복습한다 생각하고 또 모으면 되지”
그때 노트북 때문에 예민한 나의 뇌를 무언가 뻥, 하고 스쳐 지나갔다.
공부? 왜 아빠가 복습과 공부를 말하지? 아!
그는 내가 유학을 가지 않겠다고 한 2-3주 후 말한 통번역 대학원 얘기를 나의 새 진로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게 전화를 할 때마다 새로운 진로에 대해 묻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러나 내 마음의 변화가 아빠와의 전화로부터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단 얘기는 좀 더 내가 정리된 후에 말하기로 넘기며,
내 사라져 버린 데이터들에 애도를 표한다.
노트북으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내게 데이터란 내가 꽤 꾸준히, 잘, 열심히 살아왔던 증거들이었는데 그들이 아예 사라지니
내 사고가 0이 된 것처럼 기록들로 말미암아 구성됐던 기억도 0이 되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면,
잘 된 것 같다. 애초에 이제 공부와 취업 쪽으로 마음을 먹지 않겠다 하였으니 파일들이 사라지고 오로지 스스로만 남은 노트북처럼 다시 새로운 자료들을 채우면 됐다.
한 편, 반대쪽으로 돌리면,
새삼 다시 두렵다.
부담이 가득한 상황에선 새로운 시작이 유독 불안하다는데
하루 시시각각 불안과 긍정과 다짐과 믿음이 반복된다.
날아가버린 데이터에 대해선,
안녕. 나의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