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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Sep 11. 2021

산책과 대화

 어제저녁에 있었던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지만 저녁 식사로 늦게 집에 오면서 최 씨와 오래간만에 전화를 하게 됐다. 8월에 최 씨가 공모전 준비한다고 연락을  했으니 대충 7월에 연락하고 처음이었다. 구구절절 일상을 sns 메신저로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라 전화를 위해 약속 잡는 정도로만 연락하고 말았다.

 이번 주 시간이 어긋나다 어제 내가 늦게 퇴근할 시간과 최 씨가 무언가 하던 일을 끝마치는 시간이 비슷해 오래간만에 ‘말’로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때 나온 말이 우리의 ‘산책’이었다. 전화를 하며 나중에 짧은 에세이든 길게든 산책에 대해 써야지 했는데 와인을 마신 데다 나혼산을 봐야 하는 급한 스케줄이 있는 나로선 당장 그 감정을 기록할 순 없었다. 어디든 적어놔야지 원.

 그럼에도 다시 산책에 대한 기억과 말들을 떠올리게 된 건 지금 친구와 책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 읽는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 의 #루소처럼걷기 를 보고다.

 1달간 질질 끌면서 읽고 있는 중이라 앞부분은 기억이 사라지고 있어서 다시 읽는데 철학에서 정신과 신체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어져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온갖 상념과 아이디어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과연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루소는 아니라고 한다. 제일 재밌었던 것은 그가 10km의 거리를 걸으며 신문에서 <학문과 예술의 복원이 도덕성을 정화하는 데 기여했는가>를 보고 “다른 사람이 되었고 다른 세계를 보았다” 고 하며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걸으며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 등이 주변의 정보를 흡수하느라 바삐 움직이는데 걷지 않았다면 이런 기사를 못 읽었을 것이고 그는 학문과 예술 그리고 도덕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 나는 루소처럼 학문과 예술에 대해 논의하지 않지만 나름 산책 메이트와 전화를 하며 인생과 삶, 방향성에 대해 논의한다. 27살과 28살이란 나이가 지금은 아직 어리게 느껴지는데 내년 28과 29가 된다고 하니 또 그러지만도 않게 느껴진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나이와 상관없이 원하는 걸 하겠다고 노력해온 28과 현재 그에 벗어나 일을 하고  있는 27이 무엇에 근거하여 나이를 신경 쓰고 있는가.

 대답은 뻔하다. 결국 미래다. 현재와 당장 내일의, 올해 말과 내년 초를 위해 달리고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미래에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에서, 어떠한 경력도 증거물로도 남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올해 말까지 노력하겠다는 최 씨에게 문득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진짜 수고했다. 혼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언가에 몰두하고 비록 내실은 쌓일지언정 당장 성공, 합격을 하지 못하는 시간들을 견디는 건 힘든 일이다. 넌 그 시간들을 밟아온 거다. 미련 없으면 됐다. 잠깐 일을 하며 리프레시를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웃기게도 그 지긋지긋하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잊힌다.”

 내 경험이었으며 누군가 내게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물론 누군가들 내게 이런 말을 해주곤 했다. 그러나 요즘 종종 하는 말은, 머리로는 알아도 소리나 활자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 생각은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일 뿐이라는 거다. 같은 생각이어도 머리로만 추상으로 내버려두는 것과 직접 글로 쓰고 누군가에게 말로 듣는 것은 또 다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매번 위로를 해주는 글을 읽고 존중감에 대해 말하는 영상들과 책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나도 올해 봄에 그런 책을 좀 읽었다.

 현재의 나도 그러하다. 공부했던 힘든 시절을 고새 잊고 끄적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 어차피 고생할 거면 공부로 고생해도 되지 않을까….?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아직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어-매일 하는 말- 규칙적인 삶 속의 나를 자주 관찰하는 중이다. 아주 민감하고 세심하게 감정들과 태도를 살피고 있다.

 산책을 하며 가끔은 노래도 듣지 않고 산책로를 덮고 있는 나무들과 잔디, 호수, 사람들의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생각의 영역이 청명 해지는 느낌이다.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땐 노래의 분위기와 무슨 말인지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아도 가사들이 그들의 세계를 만들어 그에 머물러 돌고도는 느낌인데 말이다. 전화를 할 땐 또 다르다. 수많은 상념들을 말로 발화한다. 상대도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대충의 느낌만 기억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수많은 대화를 하고도 사나 보다. 다 기억난다면 인생 재미없겠다 싶다.

 산책을 하며 혹은 그간 사색을 해왔던 것을 누군가 전화로나마 얘기할  있다는 것은 요즘  복이라 생각한다. 다른 성격의 인간들과 같은 주제를 다르게 얘기하는 재미가 나쁘지 않다.  없는 친구지만. 혼자 있는 시간까지 더하면 ,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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