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등급에 숨겨진 현실
수혼비(獸魂碑): 동물 실험을 위해 희생된 넋을 기리는 비
손끝이 따끔거릴 정도로 추운 1월 어느 날.
시험 시간은 9시, 건물이 열리는 시간은 8시, 지금 시간은 7시 20분. 긴장한 나머지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합격하면 이곳을 다니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학교 건물을 한 바퀴 돌다가 큰 수혼비를 발견한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생각한다.
‘부디 나 때문에 희생된 작은 생명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길 바라.’
이날을 설명하려면 4년 전으로, 아니 그보다 전으로 돌아가야 하려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는 나의 3년간의 장래 희망은 한결같았다. ‘바이러스학자’.
이 꿈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성실하게 공부하는 이유였다.
당연하게도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나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남부럽지 않은 연구환경이었다.
문제는 딱 한 가지. 내가 연구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실험을 해야만 했다. 매일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때때로 생명의 희생이 필요했다.
Mouse (학명 Mus musculus): 마우스(쥐). 동물실험에 쓰이는 대표적인 모델 동물로, 성체가 되었을 때 평균 30~40g 정도이다.
내가 하는 연구는 마우스라는 실험동물을 사용한다. 대부분은 유전자가 조작되어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유전자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해서 특정 유전자를 가진 마우스끼리 교배한다.
필요 없는 유전자형을 가지거나, 성별이 다르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안락사시킨다.
‘안락사는 원래 고통 없는 죽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산화탄소 가스통이 연결된 스테인리스 상자에 마우스들을 넣으며 생각한다.
가스 밸브를 연다.
공포에 떨며 숨을 헐떡이는 생명들이 보인다.
생명을 마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 5분.
프로토콜에 따르면 마우스 흉강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원칙주의자인 나는 프로토콜에 따라 그들의 가슴이 크고 빠르게 움직였다가 결국 멈추는 것을 지켜본다.
잠시 후 밸브를 닫는다.
스테인리스 상자의 뚜껑을 열면 상자 안을 가득 채우던 지린내가 훅 퍼진다.
그 냄새 안에 작은 생명들의 온기가 남아있다.
이것을 애써 모른 척한 채, 처치실이라고 적힌 작은방을 나와 냉동고로 향한다.
사체 처리 대장에 날짜, 연구실, 내 이름, 마우스의 유전자형과 마릿수를 적고 그들을 냉동고에 넣는다. 이것이 ‘마우스 유전자형 유지’이다.
개체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마우스는 고통등급 B로 평가된다.
B 등급의 정의는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음’이다.
그들의 고통은,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렇게 평가받아도 되는 것일까.
가끔, 아니 자주 생각했다.
‘가스통이 연결된 이 상자의 뚜껑을 열고 밸브를 열면 나도 너희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실험이 잘 안 되는 날은 더 많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