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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May 03. 2022

에어로너츠, 2019

런던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러브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노팅힐 같은 로맨스 영화부터 메리 포핀스나 패딩턴처럼 어린이 동화를 영화로 만든 작품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007과 킹스맨 같은 스파이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판타지 영화인 해리포터에서도 런던의 기차역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19세기 열기구 비행을 다룬 톰 하퍼 감독의 영화 <에어로너츠>도 런던이 배경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리처드 홈즈의 소설 <하늘로의 추락>을 각색한 작품으로, 1862년 영국의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James Glaisher가 열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고도 1만 m 이상의 성층권으로 올라가서 대기에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학계에서는 인간이 날씨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글레이셔는 기상을 관측하여 일기예보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이를 활용해 농사나 재난 예방에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대다수 과학자의 냉소를 뒤로한 채 직접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랐고, 지구 대기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이 영화는 압도적인 영상미만으로도 시간을 내어 감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작진은 제임스 글레이셔가 도달했던 고도 11,277m까지 헬기를 타고 올라가서 IMAX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창공에 열기구가 고요하게 떠있는 장면에서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대자연 앞에 한없이 미약한 인간의 모습, 그럼에도 끝없이 도전하고 탐구하는 인류의 위대함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특히 여자 주인공인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 렌이 얼어버린 공기 배출구를 열기 위해서 열기구 꼭대기로 올라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보는 내내 ‘어떻게 저런 장면을 찍었을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참고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한 어밀리아 렌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로 제임스 글레이셔와 함께 비행한 기구 조종사는 헨리 콕스웰이라는 이름의 남성이라고 한다.


<에어로너츠>는 시대를 앞서 간 이들을 움직이게 한 힘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그것은 분명 동시대 사람들로부터의 찬사는 아니었다. 심지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영광도 아니었던 듯 싶다.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말하자면, 단 한 번 주어진 삶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곳에 쓰겠다는 절박함이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한정된 삶을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절박함을 느낄 만큼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있는가. 제임스 글레이셔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랐던 해가 1862년, 그러고 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60년 전이다. 오늘따라 런던의 하늘이 다르게 보인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c%97%90%ec%96%b4%eb%a1%9c%eb%84%88%ec%b8%a0/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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