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종종 눈에 띄는 콘텐츠가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80년대에서 90년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영상들이다. 이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기존 공중파 방송국들이 자신들의 과거 방송 콘텐츠들을 올리는 것이다. 이 영상들을 보다 보면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유튜브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 기존의 대형 방송국들은 유튜브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고 그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동시에 TV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알고 보면 유튜브에 과거 TV 방송 영상들이 부쩍 많아진 배경에는 유튜브에 시청자들을 빼앗긴 기존 방송국들 나름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 아니 당시에는 흔치 않았을 캠코더로 일상을 촬영했을 테니 어떤 면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찍은 영상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유튜브에 올리는 경우다. 이렇게 개인이 찍어서 올린 영상은 아무래도 방송용 영상보다는 영 산만하고 화질도 떨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시절의 기억에 더욱 깊이 푹 빠지게 하는 힘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의 요소 중 많은 것들이 없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톡,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그때는 그런 게 없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다. 불편한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른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줄여서 SNS라고 불리는 것들이 우리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과 함께 등장한 다양한 서비스와 기술들은 실로 우리 일상의 다양한 번거로움을 해결해 주었다. 그 번거로움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새로운 서비스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존재치 않았을 일이라는 점도 불편한 진실이지만 말이다. 마치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 조금 전 그것이 꿈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인지 이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심심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페이스북 앱을 열어보고 인스타그램에 댓글이 달렸는지 확인하며 적잖은 시간을 허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 후로 나는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의 앱 알림을 최소화해 두었다. 보고서를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도중에 스마트폰 앱이 알림을 보낸 탓에 흐름이 끊기는 건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 수신이나 아주 중요한 카카오톡 채팅창을 제외하고는 모든 알림을 꺼놓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알람의 부재가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궁금증을 유발하여 SNS 앱을 열어보게 충동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SNS가 나를 산만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보내는 알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거나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관심이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위력적이라는 말처럼, 실제로 열어보지 않은 SNS 앱이 그것을 확인했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소모했다. 그리고 이 관심의 본질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타인들을 내가 스스로 내려야 마땅한 가치 판단들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자체적인 기준 설정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이런 부담을 덜어낸 대가는 가혹하다. 예컨대, 출퇴근길에 페이스북으로 누군가가 휴가 때 떠난 여행 사진을 보며 그와 나를 비교하며 불행감을 느낀다. 이런 불행감은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데,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기침으로 또 다른 이들을 감염시키는 것처럼 이젠 내가 가장 잘 선별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더 중요한 문제는 불행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욕구는 정작 우리 삶에서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요소들을 소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직 SN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기 사진을 올린다는 게 불러올 수 있는 파급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을 어린 자녀의 사진을 그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나 자신이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이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직장 동료들, 오래전 졸업한 학교의 동창들 그리고 사실상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만나지 않을 불특정 다수에게 증명하기 위한 것 말고는 없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실제로 맡은 진짜 역할, 이를테면 직장에서 업무에 집중해야 할 동안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하고 댓글을 기다리고, 댓글을 기대하며 다른 이들의 사진에 댓글을 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충동과 자각과 후회와 다짐. 그 끝없는 반복에서 잠시 벗어나, 나는 SNS를 대하는 나름의 원칙 세 가지를 정하였다.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법한 스마트폰 사용자로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회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그렇게 어렵게 그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지금부터 그 원칙들을 하나씩 소개한다.
첫 번째, 다른 사람을 팔로우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삶의 기준을 남을 통해 조정하지 않기 위한 조치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브런치 계정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지 않는다. 이러한 결정은 SNS를 다루는 나의 방식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는데, 남이 나를 팔로우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남들을 팔로우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타인의 삶을 비교하는 행위를 멈추었고, 내가 남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남들이 나를 팔로우하지 않는 것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두 번째, SNS에 아이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SNS에 올린 사진 중에는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나온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식별이 불가능한 수준에 그치게 하였다. 아이의 자기 결정권이 나의 자기 표현권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이 아이의 아버지이고 보호자이지만 인터넷에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어도 된다는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 설령 지금 내 아이가 자신의 사진 공유에 동의한다고 하여도, 아직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므로 (사실 나도 그것을 완벽히 이해한 것이 아닌데) 그 판단에 내 책임을 미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향후 내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될 때까지 식별가능한 사진은 올리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근무 시간에는 SNS를 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 SNS를 하는 것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이것은 단순히 SNS에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것에 한정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도, 그것이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면, 절대로 근무 시간 중에 하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고용주가 국민인 공무원이기에, 내 급여의 출처가 무엇인지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근무시간에는 절대로 SNS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원칙들은 완벽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SNS 활동을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나의 일상을 주변에 공유하고 싶은 욕구까지는 끊지 못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단지 그것에서 파생된 현상만 조절하는 것을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에 의미가 있으리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들 세 가지 원칙을 통해 앞으로 내가 변화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삶의 기준이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또 한편으로 나의 SNS를 통한 표현 욕구가 내 아이와 직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오늘을 돌아볼 시간이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수십 년 전에 촬영한 비디오를 추억에 잠겨서 보듯 그렇게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과거의 흘러간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 있을 것인데, 오늘 소개한 세 가지 원칙은 바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b%82%b4%ea%b0%80-sns%eb%a5%bc-%eb%8b%a4%eb%a3%a8%eb%8a%94-%ec%84%b8-%ea%b0%80%ec%a7%80-%ec%9b%90%ec%b9%99/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