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쓰기를 대신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그간 갖고 있던 나름의 생각을 나누었다. 요점만 간단히 짚으면,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인간들이 남긴 지식의 조각들을 끌어모아 재조합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쓰기 작업을 도울 수는 있겠지만, 그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는 될 수 없다는 게 그 요지다.
만약 이러한 주장에 공감한다면, 아직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인공지능이 초래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짐작건대 앞으로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기준’, ‘공감’, ‘일’의 세 가지 영역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글쓰기 교육이 갖는 의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기준’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널리 사용될수록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지식들 가운데 인공지능이 만든 것의 비중도 늘어난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생산한 지식들은 또 다른 인공지능이 참고할 자료가 필요할 때 물량 공세로 인간이 쓴 글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문제는, 근친혼이 유전병의 발현 확률을 높이는 것처럼, 인간이 배제된 인공지능들끼리 상호 참조로 생산해 낸 지식은 많은 오류를 포함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문체의 적절성이 될 수도 있고 정보의 정확성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모두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머잖아 인공지능끼리의 순환으로 생성된 창작물은 지식으로서의 가치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지식 생산과 가치 판단에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만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지적 활동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한 작업인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글은 인공지능이 자기복제로 만들어 낸 결과물로 대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가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 ‘공감’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이 글을 읽을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끊임없이 상상한다. 즉, 글쓰기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과정의 연속이다. 글쓰기가 ‘역지사지’를 배울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훈련법인 이유다.
묻지마 폭행이나 갑질 같은 공감 능력의 실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SNS의 필터 버블은 개인의 고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글쓰기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의 태생적인 문제, 이어서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글쓰기 교육이 갖는 의의를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 개개인에게 있어서 글쓰기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일’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머지않은 미래,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인간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일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들이 여가 활동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글쓰기는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진 인간들이 넘쳐나는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기 위한 학습의 중요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것은 작문 능력을 훈련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글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배경지식을 습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쓰기와 그것에 수반된 학습을 통해 인간은 굳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자료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올바른 ‘기준’ 제시를 해줄 수 있는 심판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개인화된 세상에서 나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공감’ 능력을 위해서도, 생산자가 아닌 학습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을 하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글쓰기 교육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아니,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c%9d%b8%ea%b3%b5%ec%a7%80%eb%8a%a5%ea%b3%bc-%ea%b8%80%ec%93%b0%ea%b8%b0-%ea%b5%90%ec%9c%a1/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