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7월 12일 기고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7년 전 아내 직장의 발령 때문에 부산이라는 도시에 처음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부산으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실감했던 것은 서울에서는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볼 수 있는 바다가 지척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단지 바다 때문에 낯선 타지인 부산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바다는 휴가 때 여행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이니까. 내가 부산에 살기로 결심한 것은 이곳에서 만난 활기차고 따뜻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생각으로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 부산. 하지만 최근 부산의 인구 문제를 다룬 소식을 접할 때는 마음이 무겁다 못해 차라리 슬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시는 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고 한다. 이 자료는 출산 적령기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소멸위험지수를 사용했는데, 부산은 0.49를 기록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부산은 329만 명의 인구 중 65세 이상이 23%나 되어 이미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였다.
부산시도 청년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들이 부산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의 매력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의 부산 유치는 이러한 노력의 정점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부산만을 위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부산 시민이 아닌 다른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세기 전에 있었던 한 실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8년, 미국 생태학자 존 B. 칼훈은 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유니버스 25’ 실험을 통해 과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천적이 없고 먹이가 무한정 제공되는 환경에서 쥐들의 행동을 살폈다. 100일 후 첫 새끼가 태어났고 315일째에 개체 수는 660마리에 달했다. 이때부터 쥐들은 짝짓기 공간을 두고 다투며 공격성을 보였고 출산율도 떨어졌다. 결국 560일째 개체 수는 2,200마리로 정점을 찍더니 600일째 마지막 새끼가 태어난 후 번식이 끊겼다. 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졌고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칼훈 박사는 실험 1,800일째 되던 날 “이대로 두면 쥐들이 전멸한다”라며 실험을 멈췄다.
이 실험은 우리나라 정부가 그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였음에도,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근본적 이유가 수도권 인구 집중임을 시사한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리지만 주거비를 제하고 나면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명확하다. 서울에 집중된 일자리를 지역으로 보내어 인구를 분산시키고, 자연스레 서울의 주거비가 청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도 결혼과 출산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보면, 서울의 일자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은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도 이로운 일인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날개가 부러진 새를 날게 하려는 것과 같다.
기존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 부산에 좋은 일자리를 유치해 인구를 끌어들이는 것은 부산 시민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부산의 발전은 부산 사람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부산에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양질의 직장을 만들어 인구를 유입함으로써, 서울의 청년들에게도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주고, 원한다면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꿈을 품게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서울과 수도권 나아가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 비전을 통해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같은 첨예한 사안에도 부산 밖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나라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을 막아내는 중요한 방어선이었고,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 중에는 임시수도로서 피난민들을 품으며 인천상륙작전을 통한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저출산과 인구소멸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마주하고 있는 이때, 부산은 위기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언제나 그랬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c%a0%80%ec%b6%9c%ec%82%b0-%ec%8b%9c%eb%8c%80-%eb%b6%80%ec%82%b0%ec%9d%b4-%ea%b0%80%ec%95%bc-%ed%95%a0-%ea%b8%b8/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