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언제나 피부에 닿는 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습한 여름 공기, 혹은 코끝을 스치는 선선한 가을 내음처럼. 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달리던 하늘이 아른아른거렸던 그 순간이다.
그날은 초등학교(초등학교) 운동회였다. 만국기가 가을 하늘을 가르며 펄럭이고, 스피커에서는 삐걱거리는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있었다. 엄마는 작았다. 내 작은 무릎이 엄마 허리춤에 닿을 만큼 왜소했지만, 그 등의 근육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단단했다. 엄마는 달렸다.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마치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결과는 2등이었다. 내가 꼴찌로 들어온 탓에 점수가 깎였다는 걸 어린 나도 알았다. 손목에 2등이라는 도장이 찍히고 난 며칠 동안 손목의 숫자를 지우지 않았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혹은 엄마가 나라는 짐을 지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분명 1등의 결승선을 끊었을 것이다. 그때 엄마 목덜미에서 나는 시큼하면서도 뜨거운 땀 냄새를 기억한다. 그것은 승부욕이라기보다, 주어진 삶의 궤적에서 한 치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생존의 냄새였다.
엄마는 게이트볼을 치셨다. 노인들 사이에서 엄마의 스틱은 망설임 없이 공을 타격한다. 아빠는 멀리 앉아, 마치 들킬까 봐 겁내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소심한 박수를 보낸다. 엄마는 그 박수를 보지 않아도 안다. 당신의 삶이 타인의 시선이나 응원보다 스스로 내딛는 발걸음의 힘으로 지탱되어 왔음을, 엄마는 몸의 감각으로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마법 같은 손길과 우울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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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