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0% 한국인입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때, Geography (지리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세계 지리 및 각 나라별 문화, 세계정세 등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입학하고 첫 해에 들었던 수업이기도 하다. 내가 속해있던 반에는 수강생이 (미국 학교는 국내 대학교와 같이 수업별로 수강을 듣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약 25명 정도 있었는데, 첫 수업 때에 선생님이 '각자 나와서 본인의 출신을 포함해서 자기소개를 해라'라고 했다. 처음엔 '본인의 출신을 포함해서'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다행히 내가 처음 순서는 아니었어서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의 소개를 먼저 보고 유추할 수 있었다.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000 이야. 나는 1/4 스페인이고 1/4 아일랜드이고 나머지 반은 영국이야' '나는 000 야. 20% 정도? 필리핀인 거 같아 그리고 절반정도 독일일 거야' '난 000 야, 영국 독일 출신 반반일 거야 아마? 사실 잘 몰라'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것이 정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본인의 출신'이라 함은 Ethnicity (민족)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역사가 짧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가 이민자 이시거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미국으로 이민온 1세대 이기에 어느 민족 출신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구나... 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100% 한국인 피를 가진 순혈이야' (웃음 유발을 목적으로 해보았다. 미국에 처음 살기 시작해서 친구가 아무도 없었기에 농담을 통해 친구를 사귀어보려고 했다) 내 소개를 들은 선생님은 진지하게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국가의 단일민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한동한 순혈 뱀파이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 문화에 대해 더 알게 되었을 때에, 이민자의 나라여서 그런지 가정 내에서 '어느 민족 출신인지'에 대해 굉장히 스스로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민족성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찾아봐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조금 생소했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대한민국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강하고 한민족 문화가 강해서 그런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그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나고 어느 날, 나는 정말로 내가 100% 한국인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Myheritage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DNA 검사를 하게 되었다. (Myheritage 외에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민족성, 혈통 등을 알려주는 기업은 몇 개가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DNA 검사 키트를 주문하여 받고, 샘플 채취를 해서 다시 미국으로 보낸 후 결과를 받아보기까지 약 1달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나는 한민족 한국인이 아니었다.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Japanese and Korean 47.0% (한국, 일본)
Chinese and Vietnamese 29.9% (중국, 베트남)
Mongolian 23.1% (몽골)
한국 (Korean and Japanese) DNA가 최소 80% 는 될 줄 알았는데 한국의 DNA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처음엔 왜인지 충격적이면서도 실망스러웠다. 대한민국 한민족이라며 50%도 안 되는 비율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민족일리가 없는 역사를 가졌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 아내는 외국인인데 내가 DNA 검사를 할 때에 같이 검사를 했다. 아내는 친척 중에 중국인 가족이 있다고 말하며 분명 중국이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DNA 검사를 해보니, 중국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내의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East European 65.7% (동유럽)
Baltic 25.6% (발트 국가)
Iberian 1.7% (스페인 지역)
Central Asian 5.8% (중앙아시아)
Inuit 1.2% (이누이트)
아내의 가족들 중 친척은 중국보다는 중앙아시아 (카즈하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더 가까웠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과연 세계의 어느 국가가 한민족일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아직까지도 출신과 혈통을 따지는 문화는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아직까지도 어디 집안이다라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나오고, 다른 국가들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배경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DNA 검사를 통해서 민족, 출신, 등 배경이 정말 의미가 없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반대로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 배경, 출신 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 인데 우리는,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시간을 과거, 배경, 출신 등을 따져가며 보내는 것 같다.
이미 우리 인류는 모두 섞여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천적인 요소들보다 후천적인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한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린 출신과 배경에 따라 사람을 보지 말고 '한 명의 인격체'에 대한 존중이 우선시될 수 있도록 항상 연습하여야 한다.
DNA 검사 결과를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을 생물학적으로 알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