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성은 푸틴을 좋아할까?
우리가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약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점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아내의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와 매우 가까운 도시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특히나 걱정이 많았다. 그렇게 처음 공식적인 전쟁 가능성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약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우리 부부에게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에 대한 혐오가 내 아내에게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부모님이 우크라이나 접견 지역에 거주하고 계셔서 걱정이 많았던 우리는, 전쟁 시작 이후 발생한 수많은 관심으로 인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내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항상 내게 '러시아가 왜 그래' '러시아 사람들 왜 그래' '푸틴은 왜 그래' 라며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갑작스럽게 수많은 한국 아저씨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 문화, 전쟁 등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일 때문에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날 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러시아 아내를 둔 나는, 아저씨들의 의미 없는 정치적 대화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받는 질문들은 당연히 내가 받을 수 있을 만한, 충분히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질문들이었다. 선 넘는 질문 혹은 발언들도 많이 들었으나, 그냥 그려려니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러시아 여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크렘린궁에 들어가 전쟁을 막거나 푸틴에게 의견을 제시할 권한은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정말 많은 말도 안 되는 질문들과 사람들의 말에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내 아내의 인스타그램에는 점점 혐오 댓글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DM으로는 수많은 욕설과 비난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느냐 등등 다양한 DM 이 왔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거나 실제 우크라이나 국민이었던, 그러나 한국에서 내 아내와 친구로 지냈던 사람들마저도 갑자기 내 아내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내 아내는 금발의 백인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이젠 그 이후 여러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끈질기게 러시아와 푸틴, 세계정치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계속해서 본인의 말을 하며 내 아내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내 아내의 부모님이 계신 곳에 피해는 없을까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뉴스를 계속 봐야 했으나, 우린 점점 지쳐갔다.
내 아내는 편의점 데이트를 좋아한다. 집 앞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해서 집 앞 편의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주로 저녁에 가다 보니, 저녁타임에 편의점에서 근무하시는 아저씨는 우리의 얼굴을 알고 계신데, 처음에 내 아내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서 내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어느 날 기분전환을 위해 편의점 데이트를 하기로 하고 삼각김밥을 계산하려고 하는데, 편의점 아저씨 께서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푸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푸틴을 지지하나?' '푸틴이 왜 그런 거래요?'
그 이후 웬만하면 우리는 집 앞 편의점보다는 더 멀리 있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다른 편의점을 애용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은 당연히 반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대체 왜 전쟁이어야만 했는지 등 우리도 궁금하다. 러시아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갑자기 내가 러시아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 아내도 러시아사람이라고 크렘린궁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지는 못한다. 지금은 전쟁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거의 돌아왔다. 그땐 그랬지, 누가 이런 것도 말했었지 추억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편견과 괴상한 발언들 속에서도 힘든 내색 없이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Note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생활 시리즈
결혼생활 속에서 겪은 많은 에피소드 들을 글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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