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nstory Sep 14. 2023

푸틴... 그리고 전쟁... 우리도 몰라요

러시아 여성은 푸틴을 좋아할까? 

러시아 사람이라고, 혹은 그의 남편이라고 크렘린궁에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약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점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아내의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와 매우 가까운 도시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특히나 걱정이 많았다. 그렇게 처음 공식적인 전쟁 가능성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약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우리 부부에게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에 대한 혐오가 내 아내에게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부모님이 우크라이나 접견 지역에 거주하고 계셔서 걱정이 많았던 우리는, 전쟁 시작 이후 발생한 수많은 관심으로 인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내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항상 내게 '러시아가 왜 그래' '러시아 사람들 왜 그래' '푸틴은 왜 그래' 라며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갑작스럽게 수많은 한국 아저씨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 문화, 전쟁 등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일 때문에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날 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러시아 아내를 둔 나는, 아저씨들의 의미 없는 정치적 대화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받는 질문들은 당연히 내가 받을 수 있을 만한, 충분히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질문들이었다. 선 넘는 질문 혹은 발언들도 많이 들었으나, 그냥 그려려니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러시아 여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크렘린궁에 들어가 전쟁을 막거나 푸틴에게 의견을 제시할 권한은 없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정말 많은 말도 안 되는 질문들과 사람들의 말에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내 아내의 인스타그램에는 점점 혐오 댓글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DM으로는 수많은 욕설과 비난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느냐 등등 다양한 DM 이 왔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거나 실제 우크라이나 국민이었던, 그러나 한국에서 내 아내와 친구로 지냈던 사람들마저도 갑자기 내 아내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내 아내는 금발의 백인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는데, 이젠 그 이후 여러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끈질기게 러시아와 푸틴, 세계정치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계속해서 본인의 말을 하며 내 아내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내 아내의 부모님이 계신 곳에 피해는 없을까 걱정되어 어쩔 수 없이 뉴스를 계속 봐야 했으나, 우린 점점 지쳐갔다. 


삼각김밥 정도는 그냥 사게 해 주세요

내 아내는 편의점 데이트를 좋아한다. 집 앞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해서 집 앞 편의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주로 저녁에 가다 보니, 저녁타임에 편의점에서 근무하시는 아저씨는 우리의 얼굴을 알고 계신데, 처음에 내 아내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서 내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어느 날 기분전환을 위해 편의점 데이트를 하기로 하고 삼각김밥을 계산하려고 하는데, 편의점 아저씨 께서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푸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푸틴을 지지하나?' '푸틴이 왜 그런 거래요?' 


그 이후 웬만하면 우리는 집 앞 편의점보다는 더 멀리 있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다른 편의점을 애용하고 있다. 


우리가 제일 궁금해요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은 당연히 반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대체 왜 전쟁이어야만 했는지 등 우리도 궁금하다. 러시아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갑자기 내가 러시아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 아내도 러시아사람이라고 크렘린궁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지는 못한다. 지금은 전쟁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거의 돌아왔다. 그땐 그랬지, 누가 이런 것도 말했었지 추억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편견과 괴상한 발언들 속에서도 힘든 내색 없이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Note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생활 시리즈

결혼생활 속에서 겪은 많은 에피소드 들을 글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이전글 보기

1. Intro. 나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했다.

2. 01. 러시아 여성이라는 타이틀

매거진의 이전글 러시아 여자 라는 타이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