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좋아하는 부부입니다
우리 부부는 등산을 좋아한다.
날씨에 따라서 다르지만 거의 매주 안 가본 산을 정상까지 등산하고 정복했다는 마크를 지도에 세긴다. 주말을 보내는 우리 부부만의 전통? 중 하나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등산을 하다 보면 수많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등산한 산 중에서 막걸리를 산에서 드시는 아저씨 모임을 안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금발 백인의 등산은 항상 이목이 집중된다.
대부분 세 부류의 등산객들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해 신경을 전혀 안 쓰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두 번째는 지나가면서 인사하고 가는 사람, 이 역시 등산하면서 평범한 일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노골적으로 우리 부부의 위아래를 훑으며 꼭 한 마디씩 던지거나 말을 걸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청계산을 등산하는 도중에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
국사봉과 이수봉을 거쳐 청계산 망경대로 향하던 길이었다. 오랜만의 등산으로 조금은 숨이 차오르고 있었으나 정상에서 간식을 먹을 생각에 열심히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내 아내는 나보다 뒤에서 가면 더 힘든 것 같다고 해서 우린 항상 내 아내가 앞에 가고 내가 뒤에 따라간다. 그리고 아내는 홀로 더 많이 가서 거리가 벌어질 때가 있는데 앞에서 가면 더 힘이 나서 그렇다고 한다.
이때에도 내 아내가 조금 더 앞에서 열심히 가고 있었고 나는 뒤따라 가고 있었다. 저 앞에 휴식공간 같은 터가 보였고 그곳엔 꾀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저기까지만 가고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한 아저씨의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이야~ 청계산은 크~ 글로벌하네!" 그리고 그 우렁찬 아저씨 앞에는 내 아내가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우렁찬 아저씨 덕분에 그곳에서 쉬고 있던 모든 등산객들은 아저씨와 내 아내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저씨는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내 아내를 위아래로 훑으며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캬 글로벌해 글로벌 외국인도 다녀" 라며 같이 온 일행들과 웃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다.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계속 웃으면서 내 아내를 보고 있는 아저씨를 쳐다보았고, 내 모습을 발견한 한 일행 아주머니는 "어머어머 저기 남자가 쳐다보잖아 그만해 호호호호 남자친구인가 봐 호호호" 라며 아저씨에게 그만하라고 했다.
내가 조금 과민반응을 한 걸까, 하지만 그때에는 기분이 나빠서 아내에게 그곳에서 쉬지 않고 그냥 계속 올라가자고 했다. 아마 아내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들에 내가 과민반응을 하고 기분 나빠하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젠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익숙하다. 그래서 이런 반응들은 오히려 재미있어졌고 아내와 함께 웃어넘긴다. 우리 같이 국내 모든 산들을 글로벌하게 만들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랜 기간 미국에서 홀로 지냈다. 특히 시골 백인마을에서 지냈던 만큼,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서 받는 시선과 발생할 수 있는 불쾌한 상황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 아내가 겪는 한국에서의 시선과 상황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나 하나만 보고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의 생활을 결정하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Note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생활 시리즈
결혼생활 속에서 겪은 많은 에피소드 들을 글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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