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약단속국 근무도 하셨다... 고 한다...
러시아사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불곰국의 기가 센 남성들 일 것이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러시아 혹은 소련 캐릭터들은 항상 기가 세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고 하는 이미지이기도 해서 그런지, 러시아 남성에 대한 이미지가 다정하거나 스위트한 이미지는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연애할 때에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결혼을 생각하고부터 한 가지 든 걱정은 바로 '장인어른과.... 괜찮을까?'였다.
연애 초반엔 가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이후 서로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 미래의 장인어른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아버지는 어떤 분이셔?"
"음... 원래 소련시절에 군인이셨고 근데 지금은 퇴직하셨어"
"아 그래? 군인이셨구나..."
"응 대령이셨다가 군대에서는 퇴직하시고 국가 마약단속국에서 대령과 같은 위치로 근무하셨어"
"...?? 대령?? 마약단속국??"
미국에서 오랜 기간 살다가 온 나는 (아마 미국에서 거주한 사람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마약단속국이 주는 무게감과 무서움을 너무나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마약단속국, 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은 경찰과는 다른 조직으로서 그냥 마약소탕을 위한 특수부대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심지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아프가니스탄 등 마약소탕을 위한 전투도 진행하는 군조직과 다를 바 없는 무시무시한 국가조직이다. 미국 내에서도 갱단소탕 등 업무를 해야 하다 보니 당연히 거칠 수밖에 없기도 하다.
2차 대전 때 베를린을 점령한 그 붉은 군대로 유명한 소련군 대령 출신에 마약단속국에서도 대령급의 위치였다면....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아오셨을까. 장인어른의 사진을 보기 전이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의 장인어른은 푸틴급으로 무서웠다.
화상통화를 하기 전까지도 나는 어떻게 하면 언어는 안 통하지만 잘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장인어른과 화면을 통해 인사를 했다.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화면 연결을 기다리며 무표정으로 계신 모습만 처음 보았을 땐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 강력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으나, 내 아내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너무나도 온화하게 대해주셨고, 특히 딸을 보며 통화 내내 웃기만 하시는 모습은 오히려 너무나도 귀여우셨다.
결혼 후 2년이 지나서야 러시아에 방문해서 실제로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그전에 내 아내는 러시아에서 혼인신고를 하러 미리 다녀온 적이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장인어른이 아내를 통해 선물을 보내주셨는데 바로 장인어른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문의 반지였다. "우리 집에 딸 하나만 있으니 이제 사위인 네가 이 반지를 가지고 있다가 아들이 생기면 물려주면 좋겠다"라고 하시며 내게 집안의 가보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타국의 외국남자인 내게 딸이 선택한 남자라는 이유로 가보를 주신 것은 내게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이후 러시아에 가서 실제로 뵙고 인사를 드리고 함께 지낸 약 일주일 동안 장인어른은 스윗남 그 자체였다. 소련군 대령 혹은 마약단속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안일도 장인어른이 대부분 하셨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보드카를 마실 때에도 처음에 대령, 마약단속국을 들었을 때에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정 반대였다.
장인어른이 소련군 대령 출신에 마약단속국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내 친구들은 혹시 지금 러시아 정보기관 (KGB - 나도 나중에 아내를 통해서 알았지만, 푸틴도 이곳 출신이라고 유명한 KGB는 이미 1991년도에 없어진 조직이라고 한다) 이 항상 내 머리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냐, 이 술자리 이미 다 녹음되고 있다, 항상 조심해라 아내한테 잘못했다가 러시아로 잡혀간다 등 많은 농담을 던진다.
최근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때에 러시아에선 징집을 하기도 했었는데, 장인어른은 지휘관으로서 징집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다행히 전쟁 기간 중에 만 65세 이상이 되어 징집대상에서 제외되셨다. 만약 징집이 되셨더라면 전투지역 지휘관으로 가셔야 했기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에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본 적도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먼 곳의 남자에게 외동딸을 보내며 걱정은 모두 숨기시고 전적으로 우리의 만남과 결정을 지지해 주신 장인어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Note
러시아 여성과의 결혼생활 시리즈
결혼생활 속에서 겪은 많은 에피소드 들을 글로 담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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