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욕〉 — 경계와 욕망을 재구성한 프랑스적 실험

by 신성규

1976년, 세르주 갱스부르는 자신이 쓴 노래 “Je t’aime… moi non plus”를 영화로 옮겼다.

이 노래는 이미 1969년 제인 버킨과 함께 녹음해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킨 곡이었다. 숨소리와 신음,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해… 나도 그렇지 않아”라는 역설적인 가사가 뒤섞인 이 노래는, 검열과 금기를 향해 던진 프랑스식 도발이었다.


영화 〈애욕〉은 이 노래의 연장선이자 변주였다.

갱스부르는 감독이자 각본가, 그리고 음악가로서 전권을 쥐었고, 주연에는 연인이자 창작 파트너인 제인 버킨을 세웠다.

버킨은 극 중 ‘조니’라는 이름의 보이쉬한 웨이트리스를 연기한다.

짧게 자른 머리, 남성적인 제스처, 그러나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여성성.


조니는 트럭 운전사 크라스키와 얽히게 된다.

크라스키는 오랜 세월 젊은 애인 파도반과 함께 살아온 게이 남성이다.

그의 욕망은 늘 남성을 향했고, 여성과의 관계는 상상해 본 적조차 없다.

그런 그가 조니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녀를 남자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여성임을 알게 된 뒤에도 묘하게 이끌린다.

그녀의 앤드로지너스한 외모와 거칠면서도 취약한 기운은,

그의 기존 성적 정체성에 미묘한 균열을 만든다.


이 혼란 속에서 육체를 마주한 순간, 그는 발기하지 못한다.

여성기를 보는 순간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갱스부르는 이 장면에서 ‘성별’이라는 해부학적 구분과 ‘욕망’이라는 심리적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크라스키가 선택하는 것은 질이 아닌 애널 섹스다.

이 행위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성적 대안이 아니라, 규범 밖에서 관계를 재작성하는 선언이다.

성별의 틀이 해체되고, 남녀의 위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몸의 리듬과 감각의 호흡만이 남는다.


버킨의 조니는 그 과정에서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크라스키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욕망과 정체성을 재정의한다.

갱스부르는 버킨을 통해, 욕망이란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동시에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 그 불편한 진실을 화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갱스부르와 버킨은 이미 프랑스 문화계에서 관습을 깨는 커플로 알려져 있었다.

음악, 영화, 패션, 사생활 모두에서 그들은 대담했고, 대중은 그들의 행보를 스캔들과 예술의 경계에서 소비했다.

〈애욕〉은 그 경계 위에서 태어난 작품이었다.

버킨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찍는 과정이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갱스부르의 세계관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작업이라고 회상했다.


〈애욕〉은 프랑스 예술영화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그것은 성적 금기를 단순히 파괴한 영화가 아니라, 사랑과 욕망, 성별의 관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탐구한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갱스부르는 이 영화로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욕망을 꺾을 수 있는가?

아니면 욕망을 지키기 위해 사랑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가?”


〈애욕〉은 그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동시에 매혹시킨다.

갱스부르 특유의 냉소와 버킨의 투명한 눈빛이 맞물린 이 영화는,

결국 하나의 선언처럼 남는다.


욕망은 설명되는 순간 힘을 잃지만, 예술은 그 힘이 사라지기 직전의 떨림을 붙잡는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4화시간을 바꾸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