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by 신성규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평행선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이는 고전적 세계관, 즉 합리성과 규칙 속에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는 인간 관계의 은유가 될 수 있다.

서로는 나란히 달리지만, 끝내 교차하지 못하는 운명.

고독 속에 병존하는 세계.


그러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이 명제를 뒤흔든다.


쌍곡기하학에서는 한 직선 밖의 한 점에서 평행선이 무수히 존재한다.

이는 인간 관계가 단순히 ‘만나느냐, 만나지 않느냐’의 이분법을 넘어,

무수한 가능성과 변주 속에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이 무수한 평행의 가능성 중 단 하나의 궤적을 선택해, 그 점을 향하게 하는 사건이다.


타원기하학에서는 모든 직선이 결국 만나게 된다.

이는 인간의 삶 자체가 결국 ‘만남’으로 수렴한다는 운명론적 상징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이 필연적 만남을 자각하고, 그 지점을 의미로 채우는 행위다.


사랑을 유클리드적 질서로 본다면, 평행선의 만남은 불가능한 기적이다.

그러나 비유클리드적 시선으로 본다면, 사랑은 오히려 필연이며 구조 속의 가능성이다.

우리가 닿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속한 기하학의 규칙 때문일 뿐이다.

세계의 구조가 달라지면, 만나지 못할 이유 또한 사라진다.


사랑은 이렇게, 기하학의 공리처럼 절대적일 것 같던 인간의 고독을 다시 쓰게 만든다.

만남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평행선을, 다른 차원에서는 만나게 한다.

즉 사랑은 하나의 비유클리드적 사건이다.

우리가 고정된 좌표계 속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만남을,

새로운 공간 속에서 필연으로 바꿔내는 창조적 힘이다.


그래서 인간이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사실 세계의 기하학을 바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좌표와 궤적을 다시 정의하며, 각자의 직선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닿지 않을 것 같던 평행선은 결국 하나의 궤적 안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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