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

by 신성규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황금빛을 본다.

장식적이고 관능적인 표면, 중세 성화와 비잔틴 모자이크를 연상시키는 금박의 밀도 속에서 그들은 사랑의 영원성을 읽는다. 그러나 그 해석은 너무 빠르다. 시선이 황금에 머무는 순간, 그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라진다. 그들이 서 있는 장소, 발밑의 땅이다.


연인은 단단한 대지 위에 서 있지 않다. 화면 하단에서 땅은 갑작스럽게 잘려나가며, 그 아래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사랑은 안정의 은유가 아니라, 추락 직전의 균형 상태로 제시된다. 두 인물은 서 있다기보다 매달려 있다. 서로를 붙들고 있음으로써만, 아직 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그림에서 사랑은 언제나 낭떠러지의 언어로 쓰인다.

사랑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함께 떨어질 가능성’ 위에 성립한다. 황금빛은 보호막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추락이 확정된 상태에서만 가능해지는 마지막 찬란함에 가깝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다.

이 닫힌 눈을 황홀이나 순종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단순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도피가 없다. 오히려 인식이 있다. 이 사랑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 이 순간이 영원으로 고정되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끝이 파국의 형식을 띨 것이라는 예감. 그녀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그 앎은 그녀를 물러서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몸을 기울이고, 목을 노출하며, 자신의 균형을 포기한다. 이는 희생의 제스처라기보다, 사랑이 요구하는 조건을 정확히 이해한 자의 선택처럼 보인다. 사랑이란 자신을 보존한 채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걸어야만 성립하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끝을 거부하지 않는다. 끝을 받아들임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밀도를 향해, 스스로를 내어준다.


남자의 몸짓 역시 단순한 보호로 읽히지 않는다. 그는 여자를 끌어안고 있지만, 동시에 그녀를 절벽 쪽으로 밀고 있다. 그의 팔은 감싸는 동시에 방향을 가진다. 그는 붙들지만, 붙들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의 입맞춤은 정지의 행위가 아니라, 도약을 촉발하는 행위다.


이 그림에서 남자는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여자를 안전한 땅으로 되돌리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정하는 인물이다. 그의 열정은 보호 본능이 아니라, 추락의 속도를 높이는 힘에 가깝다. 사랑의 열정이란, 상대를 지키는 힘이 아니라 상대를 더 깊이 밀어 넣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인간을 안전한 위치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우리가 그동안 ‘나’라고 믿어왔던 안정된 경계 밖으로 우리를 밀어낸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경험하는 황홀은 안락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낭떠러지는 위험이 아니라 조건이다.

떨어질 가능성이 제거된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관리 가능한 관계, 예측 가능한 계약, 감정의 반복일 뿐이다. 클림트의 여인이 눈을 감고 있는 이유는, 떨어질 위험을 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에, 이제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사랑은 미래의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그 순간을 살아내는 선택이다.

그 선택은 무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명료한 인식에서 나온다. 끝이 있다는 사실, 상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 이 황금빛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인간은 그 순간을 더욱 강하게 붙든다. 끝을 알기에 아름답고, 끝을 알기에 격렬하다.


이런 의미에서 〈키스〉의 황금빛은 영원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을 가장한 찰나다. 추락을 잠시 유예하는 빛, 혹은 추락이 시작되기 직전에만 허락되는 시각적 과잉이다. 클림트는 사랑을 구원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의식된 위험으로 그린다.


결국 이 그림이 말하는 것은 사랑의 모순이다.

사랑은 인간을 가장 살아 있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크게 무너뜨린다. 우리는 그 모순을 안다. 우리는 사랑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어느 순간 바닥이 사라질지,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선다. 절벽 끝에서, 눈을 감고, 받아들인다.


〈키스〉는 그 반복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저 정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선택하는

낭떠러지 앞의 결단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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