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빈자리에서

by 신성규

나는 사랑 속에서 언제나 상처로 출발했다.

여자들이 나를 사랑해줄 때, 그들은 내 안의 상처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기척이었고,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그녀들은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와 나를 껴안으려 했다. 마치 “너의 고통까지 내가 함께 짊어지겠다”는 듯이, 그 따뜻한 팔로 내 가시 돋친 마음을 감싸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선의를 믿지 못했다. 아니, 그들의 포용력에 기대고 싶으면서도 그것을 시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내 안의 가시를 제거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깊게 드러내며 안겼다. “이래도 나를 떠나지 않겠어? 이래도 나를 받아줄 거야?”라고 속으로 말하며, 끝없이 여자를 찾아다녔다. 마치 내 상처가 가장 깊은 순간에도 껴안아줄 누군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 시험은 곧 공격이 되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여자들을 몰아세웠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떠안게 하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가시를 찌르듯 날카롭게 굴었다. 그들은 점점 지쳐갔다. 결국 하나둘 떠났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봐, 결국 아무도 내 상처를 끝까지 감당할 수는 없는 거야.”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떠나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문득 홀로 남은 내가 내 가시를 스스로 뽑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었다. 내가 직접 마주하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몫이었다. 뽑을 때의 고통은 컸지만, 그것은 견딜 만한 고통이었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은 상대방이 내 상처를 대신 제거해주는 일이 아니었다. 사랑은 서로의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서 있겠다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알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이별을 거쳤다.


가시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가 멎을 즈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들이 그리웠다. 그들의 체온, 숨결, 내 곁에서 말없이 있던 그 순간들이. 그때는 무겁고 귀찮게 느껴졌던 그 존재들이, 이제는 내게 가장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떠나보낸 건 단지 여자들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나를 구원하려 했던 손길들이었다는 것을. 그 손길을 나는 상처로 되받아쳤고, 결국 상처만 남았다.


이제 혼자가 된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시험이 아니다. 사랑은 누가 더 깊이 견디는지를 겨루는 장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자리이며, 그 불완전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다짐이다.


만약 다음 사랑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내 상처를 무기처럼 휘두르지 않으리라. 가시는 내가 뽑아내야 할 나의 몫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새 살이 돋아날 때,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손을 부드럽게 잡을 수 있으리라. 그때야말로 사랑은 시험이 아니라 선물이 되고, 고통이 아니라 따스한 호흡이 될 것이다.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배운다. 그러나 늦게 배운 진실이 오히려 더 뼈저리다. 나를 지나쳐간 여자들은 이제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내 안에 남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결국 나는 그들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그들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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