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진리, 살아 있는 철학

by 신성규

인간은 언제나 진리를 붙잡고 싶어 한다. 흔들리지 않는 기둥, 변치 않는 원칙, 고정된 철학. 그것은 불안한 삶에 안정을 주고, 혼란한 세계 속에서 나침반이 되어준다. 그러나 고정된 진리는 때로 위험하다. 그것은 돌처럼 단단하지만, 동시에 부서지기 쉬운 성질을 갖는다.


진리가 멈추는 순간, 철학은 교리가 되고, 교리는 권력이 된다. 살아 있는 사유는 흐름을 잃고, 사유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절대적인 진리를 자처한 이념들은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과 전쟁을 낳았다. 고정된 진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며, 그 앞에서 인간은 생각을 멈춘다.


그러나 진리는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진리는 어느 하나의 형태로 완결되지 않는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오류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철학이 내일의 벽을 허물 수 있다. 진리는 단단한 돌 위에 있지 않고, 흐르는 물결 속에 있다. 그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생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은 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갱신하는 행위다. 철학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늘 미완성의 상태로, 인간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유연하지 않은 철학은 죽은 철학이다.


진리를 붙잡으려는 태도 대신, 우리는 진리와 함께 흘러야 한다. 그것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길이다. 유연한 사유는 자신이 어제 내린 결론을 의심할 줄 알고, 언제든 그것을 갱신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다. 진리란 최종적인 도착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와 철학은 단단한 탑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무너지지 않는다. 유연하기에 꺾이지 않고, 흘러가기에 사라지지 않는다.


고정된 진리를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흐르는 진리, 살아 있는 철학은 우리를 더 깊이, 더 멀리 이끌어준다.

진리는 멈추어선 안 된다. 그것은 늘 질문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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