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삶

by 신성규

인간에 대해 나는 종종 교활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활함은 흔히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기만이나 이익을 좇는 술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자기 방어이자, 삶의 비틀린 지혜에 가깝다. 순진한 믿음으로 세상과 마주했을 때 나는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그 무너짐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 언제나 인간에 대한 깊은 실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은 나를 배반했다. 인간은 나를 방치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걸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인정, 누군가의 애정, 누군가의 이해. 그 모든 것들 위에 내 정신을 세웠으니, 그 기둥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곧장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내 정신의 변곡점, 즉 꺾이고 휘어졌던 지점들은 언제나 인간과의 관계와 맞닿아 있었다.


나는 한동안 사랑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다. 사랑이 없으면 삶은 무의미하다고 믿었다. 사랑은 삶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이유였고, 나를 지탱하는 마지막 빛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치명적인 환상이었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쉽게 흔드는 영역이었고, 그 위태로운 감정을 삶의 토대로 삼는 순간 나는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차라리 냉철한 자각이었다. 삶은 사랑을 통해서만 정당화되지 않는다. 삶은 그 자체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고통이 있든, 공허가 있든, 결핍이 있든 — 그것마저도 삶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인정한다.


여기서 나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에게 기대하지 말 것, 그러나 미워하지도 말 것.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미움은 또 다른 집착의 이름일 뿐이다. 인간에게 실망하며 무너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소비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에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이 태도는 흔히 ‘초연함’이라 불린다. 초연함은 차가움과는 다르다. 냉혹한 단절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음 속에서 자유로움을 얻는 상태이다. 초연한 사람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미 전제로 받아들이기에, 배신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사랑에도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것은 무심함이 아니라, 균형 위에서 서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인간은 언제나 모순적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을 고쳐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 초연함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다. 인간은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 실망조차도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사랑이 삶을 전부라고 믿었던 과거의 나를 떠나보내겠다. 이제는 사랑을 삶의 한 조각으로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조각들 — 고독, 성취, 고통, 사색 — 그것들까지 모두 껴안으며 살아가겠다. 나는 인간에게 교활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삶 앞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다. 기대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삶. 거기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초연함은 냉기가 아니라 자유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다. 나는 이제 초연함 속에서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넘어선 자리에, 더 단단한 나 자신을 세워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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