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대를 찾도록 프로그램되어 왔다. 남성은 시각적으로 건강·젊음을 신호하는 외모에 취약하고, 여성은 사회적 지위와 자원에 끌리도록 설계되었다. 유명세는 곧 지위의 압축된 신호다. 대중이 그 사람을 알아본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 집단 사회에서 ‘리더’ 혹은 ‘자원 접근권자’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명인을 만났을 때 마음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진화적 반응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유명세는 단순한 생존과 직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상징자본(부르디외)이 되어, 사람들은 유명인 곁에 서는 것만으로 자기 가치가 높아진 듯한 환상을 얻는다. 미디어는 이 허상을 끊임없이 증폭시킨다. 실질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모두가 알고 있는 얼굴’은 곧 매력의 증거로 포장된다. 이는 인간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 유명세라는 껍질로 왜곡된 것이다. 여성들의 욕망은 유명인 개인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사회적 지위와 집단적 인정에 향한다.
유명인을 마주하면 뇌는 특이하게 반응한다. 후광효과가 작동해 그 사람의 매력·성품·능력까지 과대평가하게 되고, 동시에 도파민 분출로 긴장과 설렘이 겹쳐진다. 그 결과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쉽게 마음을 열고, 이성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실상 사람은 유명인 앞에서 객관적 판단보다 감정적 반응을 먼저 경험하는 셈이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유명인을 만나 이성을 잃고 당했다고 호소하는 패턴이다. 여성들은 유명인을 마주했을 때 순간적인 판단력 약화, 자기 동일시 욕망, 그리고 사회적 지위 상승의 기대 속에서 관계에 휘말린다. 이후 상황이 어긋나거나 불쾌한 경험으로 이어지면, 그들은 “이성을 잃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며 피해를 호소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유명세가 작동하는 사회심리적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집단적 패턴이다.
여성과 남성의 반응 차이는 흥미롭다.
여성은 지위·명성에,
남성은 외모·시각적 매력에 더 취약하다.
이는 본능적 차원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학습이 강화한 구조다. 남성은 유명 여성을 보며 욕망을 투사하지만, 그 앞에서 사회적 가치의 상승을 직관하지는 않는다. 반면 여성은 유명 남성을 만나면 곧바로 자기 존재가 상승하는 듯한 환각을 경험하기 때문에 판단이 약해지기 쉽다.
결국 유명세에 대한 집착은 허상에 대한 집착이다. 사람들은 실제 능력이나 인격을 보지 않고, 집단이 부여한 상징을 욕망한다. 유명세란 일종의 가면이며, 그 가면에 홀려 우리는 자기 사고를 잠시 접는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대중은 진리를 지우는 가장 위험한 힘”처럼, 유명세 역시 대중적 착각의 결정체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의 인정 속에서 자기를 확인하려는 존재다. 그러나 유명세를 좇는 순간, 우리는 그 인정이 허상임을 잊는다. 유명인을 만났을 때 흔들리는 마음은 단순한 개인적 약점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한 집단적 욕망의 메커니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