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교육 속 창의성의 전략적 억압

by 신성규

나는 종종 동양 교육의 한계를 떠올리며, 그것이 단순히 ‘창의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문제 해결 방식은 대부분 정답 중심적이다. 시험과 평가, 성적과 경쟁은 정답을 맞추는 능력만을 강화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히 교육이 ‘멍청해서’ 창의력을 기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똑똑하게 설계된 사회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제조업 기반의 경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정답은 이것뿐”이라는 사고 방식을 심어준다. “이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알려주면, 사고의 유연성이 생기고, 노동력은 예측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교육은 노동자를 기르기 위해 설계되었지, 지성인을 길러내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정답을 맞추고, 규칙을 따르며, 효율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즉, 동양 교육의 정답 중심성과 창의 억압은 우연이 아니라, 사회적 효율과 통제를 목표로 한 전략적 선택이다. 사람들을 단순 작업과 반복 업무에 맞춰 길러내고, 사회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창의적 사고를 제한하는 것. 이는 교육 설계의 치밀함과 사회 구조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다.


하지만 이 구조는 동시에 모순을 낳는다. 창의성이 억압되면, 개인은 지적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의 혁신력도 제한된다. 노동력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국가와 사회가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와 문제 해결 능력은 사라진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인간 존재와 교육의 본질적 긴장이다. 교육은 단순히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자율적 사고와 존재로 길러내는 장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이 통제와 효율을 우선시하며, 창의성은 희생된다.


결국, 동양 교육의 한계는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전략적 의도의 산물이다. 우리가 배운 것들은 정답을 맞추는 기술일 뿐, 질문을 던지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능력을 키워주지 않는다. 인간이 본래 지닌 사고의 자유와 창의성은 그렇게 억압 속에서 잠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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