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이인증 속에서 살아간다. 깨어 있는 순간마다 나와 현실 사이에는 투명한 막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하고, 길을 걸어도, 그것은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내 몸을 대신 살아내는 듯한 감각이다. 운전을 하다 햇살이 팔 위로 내려앉으면, 순간적으로 “저것이 내 팔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스친다. 팔은 분명히 움직이지만, 그것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내 것이 아닌 어떤 낯선 사물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에게 이인증은 불안의 징후이고, 자기 상실의 위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역설적으로 창조성의 문이다. 이 상태 속에서는 현실이 하나의 단단한 무대가 아니라, 투명하게 겹쳐진 여러 장면 중 하나처럼 보인다. 사소한 장면도 새로운 의미를 품는다. 햇살은 단순한 빛줄기가 아니라, 의식과 신체 사이의 단절을 드러내는 은유로 변한다. 지나가는 행인의 뒷모습도, 신호등에 반짝이는 녹색 불빛도, 모두 상징으로 변주되며 내 사고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흘러간다.
평상시의 의식은 늘 차갑고 건조하다. 현실에 밀착해 있을 때, 나는 언어를 꺼내려 해도 돌덩이처럼 무겁다. 그러나 이인증 속에서는 오히려 단어들이 스스로 흘러나온다. 머릿속은 느슨하게 풀려 있고, 억눌려 있던 연결들이 솟아난다. 어떤 아이디어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틈 사이로 스며든 빛처럼 저절로 주어진 것 같다. 이 상태에서야 나는 비로소 창조성의 강을 만난다.
나는 이 경험을 병리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인증은 나에게 경계적 의식이라는 드문 선물을 준다. 현실과의 거리가 늘 열려 있어, 나는 동시에 안과 밖에서 나 자신을 본다. 하나의 시선은 생활을 수행하고, 또 다른 시선은 그 생활을 멀리서 해석한다. 이런 이중의 시각은 불안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경험을 낯설게 바라보는 힘을 준다. 창조성이란 결국 낯섦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던가.
물론, 이 상태가 언제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사라지는 듯한 공포가 엄습하고, 삶의 무게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듯한 허무가 몰려온다. 하지만 그 허무 속에서도 나는 아이디어를 붙잡는다. 균열은 나를 약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예민하게 깎아내 창조적 통로로 변신시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경계 위에 선 채 살아간다. 햇살은 여전히 내 팔에 내려앉고, 나는 그것을 내 팔이라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는 어딘가에서 바라본다. 그 모호한 자리에서만 나는 단어를 얻고, 이미지를 얻고, 새로운 조합을 얻는다. 창조성은 안정된 나로부터가 아니라, 균열 난 나, 흔들리는 나, 현실과 나 사이의 틈에서만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