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오면서 유난히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진단을 받은 사람만 두 명이었지만, 그 외에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을 여럿 스쳐 지나왔다. 그들을 떠올리면 항상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온다. 불편함과 연민. 겉으로는 타인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제스처, 반복되는 과시,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모두가 “나 좀 바라봐 달라”는 절박한 구조처럼 느껴졌다.
이런 사람들을 경험할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혹시 나도 비슷한 결을 가진 건 아닐까 하는 의심. 하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종류의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누군가를 내 세계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나 관계에 빠르게 몰입했다가,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열정이 꺼져버리는 쪽에 가깝다. 장난감을 들고 놀다가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처럼 이유 없이 감정의 불꽃이 털썩 꺼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패턴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내 인지 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빠른 패턴 인식과 복합적인 사고 흐름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ADHD적 주의 패턴을 갖고 있다. 이 조합은 관심을 깊게 밀어붙이지만, 동시에 비선형적으로 급격히 식어버리는 현상을 만든다.
그래서 상대가 나에게 기울어오는 순간, 긴장감이 사라지면 내 뇌는 그 관계를 “더 이상 탐구할 것이 없는 구조”로 자동 분류해버린다. 이는 성격적 악의가 아니라, 높은 속도로 구조를 파악하려는 인지 성향과 ADHD 뇌의 ‘자극 필요성’이 결합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이 때문에 나는 한순간에 깊이 빨려 들어가지만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상대는 내가 멀어지는 속도를 배신으로 느끼고, 나는 그것을 거의 불가항력처럼 받아들인다. 내 관계의 갈등은 대개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매번 진지했다. 다만 애정의 깊이는 충분할지라도, 그 깊이가 유지되는 시간의 곡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보일 뿐이다. 겉으로 보면 자기애적 결핍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자기애적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먹고 산다. 반면 나는 감탄이나 인정이 아니라, 그 관계가 일으키는 탐구·발견·미세한 긴장 같은 내적 자극에 반응한다. 그 자극이 사라지면 내 뇌는 자연스럽게 고독으로 복귀한다.
결국 나의 문제는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 아니라, 관심과 호기심이 비선형적으로 작동하는 뇌 구조에 가깝다. 패턴을 빠르게 읽어버리는 인지 성향, ADHD의 자극 추구, 그리고 감정적 민감성이 겹쳐져 오래 머무르기 어려운 관계의 곡선을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 차이를 그냥 방치하고 싶지 않다. 나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관계의 윤리를 고민하며, 내 성향이 타인에게 어떤 파동을 남기는지 꾸준히 돌아본다. 이런 성찰은 자기애적 병리에서 흔히 결핍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반성 자체가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조용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패턴을 이해하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이다. 내 뇌와 마음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더 정확히 알게 된다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다정한 방식으로 누군가와 머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