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를 생각하며

by 신성규

나는 내 죄악을 떠올릴 때마다 톨스토이를 생각한다.

그를 떠올린다는 것은 어떤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나에게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안도 대신, “너 역시 이 길을 끝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준다. 그의 삶은 죄와 윤리, 사유와 도피, 고뇌와 침묵이 한 인간 안에서 끝없이 충돌한 기록이다.


톨스토이의 죄악은 흔히 말하는 타락과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본능에 굴복한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생각이 만들어낸 균열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할 만큼 영리했고, 동시에 그것을 혐오할 만큼 정직했다. 이 양립 불가능한 두 능력이 그의 삶을 끊임없이 찢었다. 머리가 단순했다면 그는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았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었다.


윤리란 어쩌면 선을 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악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을 정확히 인식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 감각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쉽게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톨스토이가 위대한 이유는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추함을 끝내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숨기지 않았고, 고백을 미화하지도 않았다. 그 솔직함은 성인군자의 고결함보다 훨씬 잔인하다.


정신적 귀족의 삶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이 귀족성은 신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끝없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들은 쾌락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해부하고, 성공을 거두면서도 그 성공이 지닌 공허를 미리 알아본다. 세상은 충분히 단순하게 살아도 유지되는데, 그들은 굳이 의미를 묻고, 책임을 자청하고, 자기 자신을 재판대에 세운다.


이런 인간에게 죄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죄를 짓는 순간조차 그는 이미 그 다음의 반성과 자기혐오, 윤리적 질문까지 함께 살아낸다. 그래서 그의 죄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육체적 행위라기보다, 정신 전체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사건이다. 생각이 깊다는 것은, 죄의 깊이 또한 함께 깊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톨스토이가 결국 농사로 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흙을 만지고, 몸을 쓰고, 반복되는 노동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은 것은 사상적 선택이기 이전에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정신을 잠시라도 눕히기 위해, 사유 이전의 세계로 내려가야 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땀을 흘리는 행위는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옳고 그름도, 의미도, 죄도 잠시 자리를 잃는다.


무아지경이란 깨달음의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감시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인간은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에만 머문다. 톨스토이가 농사에서 느낀 행복은 고상한 사유의 결실이 아니라, 사유가 잠시 침묵했을 때 찾아온 휴식이었다. 그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인간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동류처럼 느낀다. 복잡함을 덜어낼 수 없고, 질문을 중단하지 못하며, 윤리를 묻지 않으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존재. 생각은 나를 인간답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망가뜨린다. 죄를 인식하는 능력은 나를 도덕적으로 세우는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해체한다. 그 이중성 속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워진다.


아마 우리는 단순해질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함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보여주었듯,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에게도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은 필요하다. 그것이 노동이든, 몰입이든, 어떤 형태의 침묵이든 상관없다. 윤리를 묻는 정신은 완전히 쉴 수 없지만, 잠시 눕혀둘 자리는 필요하다.


복잡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뇌도, 죄의식도, 질문도 계속 숨을 쉰다.

다만 흙을 만질 때처럼, 몸이 앞서고 생각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 무게가 잠시 땅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죄와 윤리 사이의 인간이 아니라, 그냥 살아 있는 존재로 머문다.


톨스토이는 그 순간들을 붙잡으려 했다.

나 역시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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