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고찰

by 신성규

나는 한때 전쟁의 필연을 민족마다 다른 사고방식에서 찾으려 했다. 언어, 역사, 기억, 신화가 다르니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차이가 충돌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범인류적인 문화와 예술, 즉 국경을 넘는 감각과 공감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음악과 문학, 회화와 철학이 인간을 민족 이전의 존재로 되돌려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것은 다소 순진했지만, 인간에 대한 마지막 낙관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렸다. 전쟁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정산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문화는 전쟁을 부끄럽게 만들 수는 있어도, 이해관계를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국가는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는 계산으로 움직인다.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흔들 수는 있지만, 국경을 지우지는 못한다.


국가연합기구는 그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이상적으로는 인류의 양심을 대변해야 할 기구가, 현실에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무력한 회의장이 된다. 선언은 많고, 문장은 아름답지만, 실제로 피가 흐를 때 그 문장들은 아무것도 막아내지 못한다. 국제법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집행할 힘은 언제나 특정 국가의 군사력에 의존한다. 정의는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힘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결국 문제는 제도 이전에 인간으로 돌아온다. 나는 인간의 탐욕이 가장 원초적인 죄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장된 결함에 가깝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더 안전해지려는 충동, 남보다 앞서고 싶다는 본능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의 논리로 확장된다. 국가란 결국 개인의 탐욕이 제도화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 구원을 방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손에 무기를 쥐고, 공존을 외치면서도 자원을 선점한다. 전쟁은 언제나 명분으로 포장되지만, 그 밑바닥에는 늘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누가 더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윤리와 이상은 쉽게 밀려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 보게 된다.

탐욕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타자를 목적이 아니라 존재로 바라보는 힘. 소유하지 않아도 지키고 싶어지는 마음. 계산이 멈추는 순간.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감정.


그러나 이 사랑조차도 결함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람들은 사랑과 탐욕을 분리하지 못한다. 오히려 둘을 결합시킨다. 내 가족, 내 민족, 내 국가, 내 편만을 사랑하는 방식. 그 사랑은 보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배제의 논리를 낳는다.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남의 사람”을 위협하는 구조. 사랑이 확장되지 못할 때,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의 정당화가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나의 구조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탐욕과 사랑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승리한 적은 없었지만, 세계가 탐욕에 더 가까워질 때마다 인류는 반복해서 무너져 왔다. 전쟁, 학살, 착취의 역사란 결국 이 균형이 무너진 흔적들이다.


탐욕과 사랑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어느 쪽으로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기울게 할 것인가. 나는 그 역할이 예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제도를 바꾸지 못하지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법을 만들지는 못해도, 인간의 감각을 흔들 수 있다. 탐욕을 합리화하는 언어가 세계를 지배할 때, 예술은 그 언어를 낯설게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이다.


사랑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방향이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지만, 그 방향을 잃는 순간 인간은 더 빠르게 추락한다. 탐욕을 인정하되 미화하지 않고, 사랑을 믿되 맹목적으로 숭배하지 않는 것. 그 불안정한 균형 위에서만, 인간은 간신히 인간으로 남는다.


전쟁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필연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포기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 질문을 붙잡는다. 범인류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탐욕의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를 조금이라도 사랑 쪽으로 되돌리려는 끈질긴 시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톨스토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