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주점을 떠나며

by 신성규

한식 주점에서 요리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체력, 구조, 미래,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피로까지. 결정은 이성적으로 내렸지만, 마음은 끝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떠나는 순간부터 열패감이 따라붙었다. 또 도망친 건 아닐까, 끝까지 버티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삶의 장면을 중간에서 내려버리는 사람이 아닐까. 자괴감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스며들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나를 붙잡았다. 같이 일하던 여직원이 내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울었다. 두 달 남짓 함께 일했을 뿐인데, 그녀는 생각보다 깊게 흔들린 얼굴이었다. 그녀는 나를 미운오리새끼 같다고 말했다. 백조인데, 백조가 아닌 곳에 섞여 있어서 계속 고통받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부정도, 수긍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 있었다. 아마도 그 말은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요리하면서 품고 있던 어떤 태도나 감각, 혹은 종종 말한 예술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운다는 경험은 낯설었다. 나는 평생 가족과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진정한 의미의 연결성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관계는 있었지만, 깊이 닿아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울음은 나를 감동시키면서도 동시에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존재였나. 나는 그동안 무엇을 놓치며 살아온 걸까.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움. 나를 위해 울어준 여자들이 떠올랐다. 인생의 몇 장면마다, 내가 알아차리기엔 너무 늦게 나를 아껴주었던 사람들. 그들은 이미 각자의 삶으로 떠났고, 나는 그 울음들을 온전히 붙잡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지금 와서야 그 기억들이 한꺼번에 돌아와 가슴을 누른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떠났다는 사실보다, 누군가에게 남겼다는 흔적 때문에. 나는 언제나 관계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빨리 떠나거나, 너무 늦게 깨닫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나를 알아보고, 울어주었다. 그것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더 깊은 책임감을 남긴다. 나는 과연 그 울음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가.


아마 나는 여전히 도망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공허한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었든, 태도였든, 혹은 말없이 드러난 어떤 진심이었든.


그래서 나는 지금,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무게다.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는 증거 같은 무게. 떠난 자리에서 남겨진 울음이, 나를 다시 삶 쪽으로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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