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본질

by 신성규

우리는 힘들 때 흔히 마음을 다독이는 법부터 배운다. 괜찮다고 말하는 법, 생각을 흘려보내는 법,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 나 역시 그 방법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마음챙김과 명상은 분명 도움이 됐다. 숨이 가빠질 때마다 나를 잠시 멈춰 세워줬고, 감정이 폭주할 때마다 추락을 늦춰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느낌이 남았다. 나는 계속 버티고는 있었지만, 나아가고 있지는 않았다.


우울이 반복될 때, 우리는 흔히 내 마음이 약해서 그런가, 내가 생각을 잘못해서 그런가를 먼저 의심한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더 긍정하려 하고, 더 내려놓으려 하고, 더 단단해지려 한다. 하지만 어떤 우울은 마음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가 보내는 신호에 가깝다. 지금 서 있는 환경이 나를 계속 소진시키고 있다는,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같은 자리에서 닳아갈 거라는 신호.


나는 여러 번 번아웃을 겪으면서 그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게 됐다. 충분히 쉬지 못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속 자신을 설득하며 버텼기 때문이었다. 마음챙김은 고통을 견디는 힘을 길러줬지만, 고통의 원인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명상은 파도를 가라앉혀줬지만, 내가 왜 계속 거친 바다 위에 서 있는지는 바꾸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위로는 필요하지만, 위로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과 환경을 선택하는 용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나는 계속 나를 달래는 데에는 익숙해졌지만, 정작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움직이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불안해질까 봐, 흔들릴까 봐, 지금 가진 균형이 깨질까 봐 조심하면서,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만족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불안정한 도전이, 이 낯선 변화가, 지금의 무기력한 안정감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거기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있을 것 같았다. 지치더라도 이유를 알 수 있는 피로, 힘들더라도 방향이 있는 고단함이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평온해 보여도 내 안이 계속 말라가던 환경보다, 차라리 흔들리더라도 내가 원해서 들어간 자리에서 흔들리는 편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행복은 마음 상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의 성질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견딜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서서히 소진된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 자신을 고치려 들고, 삶의 자리는 그대로 둔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능숙하게 버티는 사람이 될 뿐, 점점 더 살아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이제는 안다. 내가 바꿔야 할 것은 감정을 느끼는 방식만이 아니라, 감정이 자라나는 토양이었다는 걸. 나를 자주 지치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평온해지는 법을 연습하는 대신, 나를 조금 더 살아나게 하는 자리로 옮겨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걸. 그 과정은 분명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은 나를 소모시키는 불만족보다 훨씬 정직하고, 훨씬 생명에 가까운 감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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