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꿈

by 신성규

나는 전원에서 살고 싶다.

도시를 떠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확히는, 삶이 다시 느껴지는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시간이 숫자가 아니라 빛과 그림자로 흐르고,

하루의 시작과 끝이 알람이 아니라 하늘의 색으로 결정되는 곳으로.


아침이면 흙이 먼저 말을 건다.

밤새 머금은 수분의 냄새,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잎의 각도.

농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무언가를 ‘얻기’보다

함께 늙고, 함께 실패하고, 다시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식물은 인간의 조급함을 비웃지 않고,

그저 자기 속도로 살아갈 뿐이다.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은

언어 이전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거리,

침묵 속에서도 깨지지 않는 관계.

그들의 눈동자에는 평가도 계산도 없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감각만이 남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음악을 만든다.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의 진동을 기록하듯.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 생기는 리듬,

비가 오기 직전의 낮아지는 공기,

해 질 녘 동물들이 움직이는 속도.

자연은 언제나 악보 없이 연주되고,

나는 그 곁에서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린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잘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쉬운 순간을 붙잡기 위해.

햇빛이 나무껍질에 부딪혀 생기는 미세한 명암,

계절이 바뀌며 초록이 서서히 다른 초록으로 변해가는 과정,

동물이 경계를 풀고 다가오는 찰나의 표정.

도시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배경이 되지만,

자연에서는 그것이 전부가 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오늘 무엇에 감동했고

어디에서 숨이 깊어졌는지를 남기는 기록.

그 글이 세상에 읽히지 않아도 괜찮다.

나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나는 내 순수를 이해받고 싶다.

순수함이 미숙함이 아니라

끝까지 감각을 잃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들,

혹은 굳이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자연 속에서.

자연은 묻지 않는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어디에 쓸 건지.

그저 존재하는 것을 허락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전원 생활은 도피가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생산과 성취로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음악과 그림과 글로 나를 순환시키는 삶.

자연과 함께 늙고,

감각을 끝까지 쓰다 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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