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
밤 열 시가 되면
미래가 현재로 밀려오고
과거가 동시에 겹쳐졌다.
시간이 아니라 파도가 머리를 치는 느낌이었다.
불안은 생각이 아니라 현상이었고,
머리는 쥐가 나는 듯 조여왔다.
그래서 약을 삼켰다.
프로작.
도망이 아니라 잠깐의 방패로.
내 뇌는 늘 먼저 달린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의 결과를 계산하고,
이미 지나간 장면의 다른 선택지를 재생하며,
모든 사건에 의미를 붙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피로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
생각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 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조금 내려놓으라고.
덜 생각하라고.
처세술을 배우라고.
사회에 맞게 둥글어지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들은 내게 맞지 않는다.
나는 둥글어질수록 부서지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다짐한다.
“남들과 같지 않으니
남들이 권하는 삶의 기술 속으로
내 몸을 구겨 넣지 말자.”
하지만 인간은 약하다.
외로울 때,
불안할 때,
정상처럼 보이고 싶을 때
나는 또 시도한다.
그리고 늘 너덜거린다.
찢어진 채로 돌아온다.
문득 묻게 된다.
나와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대개
잘 살지 못했다.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는.
그들 대부분은
세상에 적응하려다 무너졌고,
관계 속에서 과부하가 걸렸고,
자기 자신을 문제라고 착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늦게
혹은 너무 늦게
하나를 포기한다.
정상으로 살겠다는 욕망.
그때부터 삶의 방향이 바뀐다.
더 잘 사는 쪽이 아니라
덜 상처받는 쪽으로.
그들은 사람을 줄였다.
설명을 멈췄다.
판단받는 자리를 피했다.
속도를 낮췄고,
고독을 실패가 아니라 구조로 받아들였다.
행복해졌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 질문 자체가 그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덜 소음 속에 있었고,
덜 자기 자신을 배반했고,
자기 뇌와 싸우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약을 먹는다는 건
패배가 아니었다.
생각의 폭주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일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덜 밀려오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목표는 단 하나다.
자기 자신과 더 이상 전쟁하지 않는 상태.
나는 이제 안다.
나는 고쳐질 존재가 아니라
다르게 놓여야 할 존재라는 걸.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구조가 섬세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것은
거칠게 다루면 망가지고
자기 자리에 놓이면 오래 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세상 속으로 더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이 내 안으로 덜 들어오게
조심스럽게 하루를 정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