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점점 닮아가는가

by 신성규

근친상간은 단지 생물학적 금기가 아니다. 다양성을 잃은 시스템이 스스로 약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하나의 은유다. 같은 유전자끼리 반복적으로 결합하면 생명은 취약해진다. 사회와 조직, 개인의 사고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를 제거하고 유사성을 강화할수록 안정은 얻지만 생명력은 줄어든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효율과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다. 산업화와 수출 중심 성장, 입시 경쟁과 대기업 중심 고용 구조는 하나의 표준적 인간형을 만들어냈다. 정해진 교육 코스를 통과하고, 검증된 조직에 들어가며, 사회적으로 승인된 삶의 궤도를 따르는 사람. 문제는 이 표준이 점점 더 강력한 규범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선택은 실패나 일탈로 해석되기 쉽고, 사회적 안전망보다 사회적 시선이 더 강한 통제 장치로 작동한다.


기업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기업의 강점은 조직적 결속과 빠른 실행이다. 그러나 동일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인재들로 구성된 조직은 장기적으로 위험해진다. 내부에서는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결정이 외부 환경에서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계적 문화 속에서 비판은 종종 무능이나 불충으로 간주되고, 혁신은 승인받아야 하는 행동이 된다. 결국 기업은 점점 더 정교해지지만 동시에 점점 더 경직된다.


정치 역시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서로 다른 생각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 된다. 같은 의견을 가진 집단끼리만 소통하는 사회에서는 현실에 대한 해석 자체가 분리된다. 그 결과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축적되며, 시스템 전체의 신뢰는 서서히 소모된다. 다양성의 부족은 단순한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리스크로 전환된다.


개인의 삶에서도 근친적 구조는 쉽게 형성된다. 우리는 편안함을 제공하는 관계와 환경을 선택한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만 만나고, 나의 세계관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소비한다. 알고리즘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불편함이 제거된 삶은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성장의 동력도 함께 제거한다.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복제하는 정신은 어느 순간 현실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여전히 해답인지, 아니면 더 다르게 생각하고 더 다양한 삶을 허용하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근친적 구조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만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회와 조직, 개인 모두를 취약하게 만든다. 닮아가는 것은 편안하지만, 지나치게 닮아가면 결국 변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된다.


성숙한 사회는 동일성을 강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차이를 관리하는 사회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고, 다른 생각이 생존할 수 있으며, 실패가 곧 추방을 의미하지 않는 구조. 그것이 없다면 어떤 성장도 지속되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쟁이 아니라 더 많은 다양성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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