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시간은 종종 존재한다. 다만 그 시간은 이미 외부로 점유된 상태다. 해야 할 일, 처리해야 할 정보, 반응해야 할 타인의 요구들이 의식을 채우고 나면, 남아 있는 시간은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소비된 시간의 잔여일 뿐이다.
이때 인간은 여전히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생각을 지속할 수 없다. 생각은 밀도를 요구한다. 하나의 문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하나의 질문을 버리지 않고 따라가는 힘. 그러나 바쁜 삶은 이 밀도를 끊임없이 해체한다. 모든 것은 빠르게 전환되고, 주의는 잘게 쪼개지며, 의식은 얕은 표면 위를 미끄러진다. 그래서 글쓰기는 사라진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흩어진 의식을 다시 한 점으로 모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글쓰기는 과연 여유 있는 사람들의 취미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질문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사유와 기록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와 여백을 필요로 했고, 생존에 밀착된 삶은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세계에 반응하는 데 집중한다. 그런 삶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사치처럼 보인다. 그래서 글쓰기는 종종 부르주아적 취미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이 설명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더 근본적인 움직임을 놓친다. 글쓰기는 여유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로는 해결되지 않는 감각의 산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이 단순히 흘러가지 않는다. 경험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사건들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으며, 감정은 구조를 요구한다. 이때 인간은 그것을 흐려버리거나, 끝까지 붙잡는 두 선택지 앞에 선다. 대부분은 전자를 택한다. 그것은 의식적인 결정이라기보다, 삶의 구조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방향이다.
현대의 삶은 고통을 제거하기보다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다른 자극으로 이동할 수 있다. 화면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관계는 공백을 메우며, 일은 생각을 미루는 가장 정당한 이유가 된다. 그 결과 고뇌는 사라지지 않지만 지속되지도 않는다. 짧은 파편으로 나타났다가 곧 다른 것에 의해 덮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는 근원적인 고뇌가 없어 보인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부재가 아니라 지속되지 못하는 상태다.
고뇌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조건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 의미에 대한 질문,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내재된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는가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붙잡는다. 그는 그것을 빠르게 해소하지 않고, 불편한 상태를 유지한 채 언어로 끌어올리려 한다. 이 과정은 효율적이지 않으며, 명확한 보상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끝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 작업을 반복한다.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경험이 해체되는 감각,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불안. 이 모든 것이 글쓰기를 만든다. 그래서 글쓰기는 부르주아적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이 자신의 내면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바쁠수록 사람은 읽지 않고 쓰지 않는다. 이 문장은 하나의 경고처럼 들린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에 대한 서술이다. 바쁨은 시간을 빼앗지 않는다. 바쁨은 방향을 바꾼다. 의식이 외부로만 흐르기 시작하면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힘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 능력은 쉽게 사라진다. 처음에는 단지 피곤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하려 해도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때 인간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멀리 떠나 있는 상태가 된다.
글쓰기는 그 거리를 되돌리는 행위다. 멈추고, 바라보고, 붙잡는 일이다. 흩어진 자신을 다시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바쁠수록 글을 쓰지 않게 되는지. 글을 쓰는 순간, 우리는 다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질문들과,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과, 끝내 정리되지 않은 자신을.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끝내 글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결국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외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