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석유 계엄령

김용범 정책실장의 주장에 대한 반론

by 신성규


김용범 정책실장은 ‘석유 최고가격제’와 관련하여 여러 비판이 구조를 오해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핵심적인 경제 원리를 회피하거나, 단기적 회계 논리로 장기적 구조를 덮고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주요 주장별로 반론을 제시한다.



1. “재고평가이익 구간이므로 손실이 아니다”에 대하여


정유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원가가 아니라 대체 원가(replacement cost)다.

현재 판매되는 제품이 과거 60달러 원유로 생산되었더라도, 이후 동일한 재고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100달러 이상의 원유를 구매해야 한다.


이때 가격 상한으로 인해 판매 가격이 미래 원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해당 기업은 이미 경제적 손실 상태에 진입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손실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유 산업의 작동 방식을 단순화한 해석이다.


2. “진짜 손실 구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에 대하여


시장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 기대를 반영한다.


정유사는 이미 고가 원유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향후 투입될 원가 상승은 사실상 확정된 변수에 가깝다.


이 상황에서 가격 상한이 유지된다면

손실은 회계적으로 ‘나중에’ 나타날 뿐,

경제적으로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손실을 시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과

손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리스크다.


현재 발생하는 손실을 일정 부분 보전하고

이를 사후적으로 정산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보전은 전제 조건에 의존한다.


즉, 고가에 도입한 원유가 실제로 판매되는 시점에도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만약 원유 가격이 하락할 경우,

정유사는 고가 원유를 기반으로 한 손실과

하락한 제품 가격 사이에서 이중 부담을 지게 된다.


이 경우 발생하는 손실은

사후 정산이나 정책적 보전으로 완전히 흡수되기 어렵다.


결국 이 구조는

현재의 손실을 미래로 이연시키는 동시에,

유가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기업과 국가가 불완전하게 나누는 형태로 작동한다.


따라서 ‘손실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단순한 시점의 문제가 아니라,

손실의 구조와 리스크 분배를 간과한 해석에 가깝다.


3. “소비는 구조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에 대하여


단기 수치 비교에서 소비 증가가 제한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핵심은 소비량 자체가 아니라 가격 신호의 왜곡이다.


가격이 억제되면 에너지 절약 유인은 감소하고,

소비는 장기적으로 비효율적인 수준에 고착된다.


또한 시행 직후 나타난 선행 구매 역시 실제 수요의 일부이며,

이는 단기적으로 공급 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의 기준이다.


현재는 단순한 시장 상황이 아니라

원유 위기 경보가 발령된 비상 상황에 가깝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정상적으로라면

가격 상승과 정책적 절약 조치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공공 부문과 기업에서는

차량 운행 제한 등 다양한 절약 조치가 병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감소하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이는 구조적으로 수요가 억제되지 않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즉, 통계상 “소폭 증가” 혹은 “유지”로 보이는 수치 역시

정상 상황이 아니라 위기 상황을 기준으로 해석할 경우,

사실상 수요가 증가한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폭증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단순 수치에 대한 해석일 뿐이며,

가격 신호 약화로 인해 수요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4. “경유 가격 억제는 물가 안정을 위한 선택”에 대하여


경유가 물류와 생산에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방식은

비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연시키는 것에 가깝다.


가격 왜곡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 에너지 효율 개선 지연

- 대체 연료 및 기술 전환 지연

- 특정 산업에 대한 과잉 의존


이는 단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더 큰 구조적 비용을 초래한다.


5. “최고가격은 규칙 기반 시스템이다”에 대하여


정책이 규칙 기반이라는 점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정부는 최고가격이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의 2주 평균 변동률을 반영해 산정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이 규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


특히 3차 최고가격 조정에서는 국제 경유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산식대로라면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가격을 동결하는 선택이 이루어졌다.


이는 규칙이 유지된 것이 아니라,

정책 판단에 의해 결과가 조정된 사례다.


규칙 기반 시스템의 핵심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해진 산식을 따른다는 데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규칙이 유연하게 해석되거나 변경된다면,

그 시스템은 더 이상 규칙 기반이라 보기 어렵다.


이 경우 시장 참여자들은 가격 결정 과정이

공식이 아니라 정책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가격에 대한 신뢰는 약화되고

정유사와 유통업자는 미래 가격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며,

투자 및 공급 의사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6. “국내 정제 능력과 공급 구조로 가능한 정책”에 대하여


한국이 높은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정책 수행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국제 시장과의 연결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국내 가격을 억제하면

기업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해외 시장으로 물량을 이동시키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들은 평상시에도 수출 비중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 가격과의 차이가 발생할 경우 수출 확대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정부 역시 이러한 유인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석유제품 수출 물량을 전년 동일 기간의 100% 수준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병행하였다.


이는 수출 증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내수 공급을 강제하는 방식의 개입이다.


즉, 단순히 가격을 통제하는 수준을 넘어

공급의 방향 자체를 행정적으로 통제한 것이다.


그 결과 시장은 사실상 부분적으로 폐쇄된다.


가격은 통제되고,

물량은 내수로 묶이며,

국제 시장으로의 흐름은 제한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원 배분이 시장 가격이 아니라

행정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정책은 “정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그 정제 능력을 기반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일시적으로 대체한 사례에 가깝다.


7. “이는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문제”에 대하여


정책이 선택의 문제라는 점은 맞다.

그러나 선택은 항상 비용과 효과에 대한 분석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가격 통제는 단기 충격을 완화하는 대신

시장 신호 왜곡, 공급 위축, 장기 비용 증가라는 대가를 수반한다.


따라서 이 정책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어떤 비효율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며,

그 비용은 결국 미래의 시장 참여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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