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지만,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탄생은 불균형 속에, 죽음은 무차별 속에 존재한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죽음에 ‘고저’는 없다는 단순한 진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인간 사회를 얼마나 뒤흔드는지에 대해.
불교는 겉으로는 금욕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은근한 쾌락주의가 흐른다.
욕망을 억제한다는 욕망.
나는 요즘 들어 힌두교에 더 강하게 끌린다.
힌두교는 복잡하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명징하다.
교리 하나하나가 논리의 연쇄처럼 이어지고,
윤회와 카르마, 다르마의 사상은 마치 세포의 생물학적 순환 체계처럼
유기적이며 질서정연하다.
인류는, 어쩌면 제3의 지성체가 실험실에서 키운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원숭이를 관찰하듯 관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 중심성은, 결국 종교로 귀결된다.
하지만 종교는 인류애보다 교리를 앞세워왔다.
인간 중심으로 교리를 개량하고, 왜곡하고, 신조차 조리돌림했다.
같은 신을 믿는 이슬람과 가톨릭, 개신교는 다른 민족, 교리의 명분 아래 수많은 피를 흘렸다.
히틀러도, 징기즈칸도 지구 최대 학살자는 아니다.
진정한 학살자는, 일신교를 독점하고 자국화한 맹목적인 숭배의 역사다.
다신교의 힌두교는 종교 시스템의 가능성이다.
힌두교는 불가촉천민이라는, 냉정하게 말해 불평등한 시스템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다.
그들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시스템을 짠다.
종교가 ‘시스템’을 아는 순간, 신은 더 이상 민족주의의 인형이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자문한다.
피조물이라고 해서, 꼭 창조주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당신이 만약 부모에게 학대받았다면,
“그래도 부모니까”라며 복종할 것인가?
신도 마찬가지다.
존경은 존재하지만, 복종은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힌두교로 개종하러 인도로 떠나리라.
교리를 논리로, 삶을 윤회로 바라보는 종교.
우파니샤드를 사서 읽고, 그 안에서 삶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
우파니샤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