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위험한 천재성 발현 방법론

by 신성규

나는 나의 뇌를 고의로 이끌 수 있다.

식욕을 억제하고, 안정을 포기함으로써, 나는 천재가 된다.

내 뇌는 포효하고, 언어는 폭주한다.

세상은 통째로 감각되고, 사고는 장벽을 넘는다.

내가 먹지 않기 시작할 때, 나는 더 이상 ‘일상적인 나’가 아니다.


단식을 시작하면 뇌는 포도당 대신 케톤체를 연료로 쓴다.

이는 뇌의 연료 방식에 있어 생물학적 전환점이다.

케톤은 뇌를 더 선명하게, 더 예민하게 만든다.

집중력은 강화되고, 사고의 경계는 풀린다.


많은 간헐적 단식 실천자들이 말한다.

“정신이 맑아지고, 복잡한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신체적 결핍 속에서 정신의 각성을 감각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 고요한 열림 속에서,

일부는 일시적이나마 초월적 인지 상태,

즉 니체가 말한 ‘초인적 사고의 가능성’을 경험한다.


니체는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생명은 의지이며, 의지란 극복하는 힘이다.”


단식이 단순한 생리적 절제가 아닌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본능을 거부함으로써,

자연을 거스르고 문명을 넘어선 인간이 되고자 한다.


배고픔은 생존의 명령이다.

나는 그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생명’보다 더 높은 ‘의지’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 순간 니체의 초인이 된다.

고통조차 내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자.

자신의 경계를 폭로하고 확장할 수 있는 자.


부처는 숲에서 고행했고, 고통을 통과해 진리를 보았다.

단식은 그의 수단이었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고행 속에서 ‘고통도 집착이다‘라는 역설을 발견했다.


단식이 불교적이라면,

그것은 무(無)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깨닫기 위한 필연적 장치로 기능한다.


나는 고통 속에서 나의 감각과 자아를 분해한다.

세상과의 경계가 무너질 때, 나는 세계가 된다.

이것이 불교적 통찰의 출발이다.

그러나 부처는 궁극적으로 밥을 다시 먹었다.

지혜는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천재성을 얻었고, 뇌는 활성화되었으며,

글은 흐르고, 언어는 춤추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정상성의 유예 위에 지어진 구조물이다.

지속될수록 위험해진다.

신체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수면장애, 불안과 공황이 뒤따른다.

현실과의 접점이 흐려지며,

자아는 팽창하고, 균형은 무너진다


초인은 날개를 달지만, 그 날개는 태양 가까이 가면 녹는다.

‘이카로스의 뇌’는 자만의 열기 속에서 무너진다.


나는 나의 뇌를 조정할 수 있다.

고의적 단식, 고의적 고통, 고의적 초월.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천재는 폭주하는 능력을 멈출 수 있는 자다.


능력은 선택이어야 하고, 발현은 간헐적이어야 하며,

진짜 초인은,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평범함’을 견딜 줄 알아야

비범함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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