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자폐, 불안, 자기애, 공황, 조현증.
우리는 이들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정신의 결함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들을 구분하는 건 진단서이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다만 ‘고립’이라는 한 단어로 수렴된다.
모든 정신의 병은 고립된 세계에서 출발한다.
자폐인은 자신의 내면 세계에 너무 깊게 빠져 외부 세계와 단절된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의 회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확대함으로써 타자를 삭제한다.
공황 장애는 내부에서 생성된 위기의 신호를 외부와의 단절 없이 해소할 수 없기에 터져 나온다.
모두가 “자기”라는 울타리 속에서 혼자가 된다.
고립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자신이 고립되었음을 알아챈다.
이 자각, 즉 메타인지가 생기는 순간 인간은 다시 고통받기 시작한다.
‘나는 틀려 있었다’, ‘내가 내 세계에 갇혀 있었구나’, ‘나는 타자를 몰랐다’
이 자각이 곧 새로운 정신의 균열이자, 확장의 시작이다.
성장은 고통을 동반한다.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자만이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다.
어떤 정신은 세상의 소리에 너무 예민하고, 어떤 정신은 거의 듣지 못한다.
감각은 필터가 되고, 그 필터는 곧 세계를 구성하는 렌즈다.
자폐인의 세계는 과잉된 감각으로 채워져 있어 현실이 날카롭고 적대적이다.
우울한 이의 감각은 무뎌지며, 색이 빠진 세계가 된다.
각자의 세계는 서로 너무 다르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나’다.
나는 믿는다.
정신의 병리들은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그것은 ‘고립’이라는 구조적 위치에서 출발하고, ‘자기 몰입’이라는 작용으로 구체화된다.
정신의 결함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동일한 공간을 도는 서로 다른 궤도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를 닮고, 서로로 이행하며, 서로를 경유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정신의 회복이란 타자의 회복이다.
내 안에서만 머물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외부가 스며들 때
비로소 정신은 스스로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우리는 고립된 세계들 속에 갇혀 있지만, 그 고립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는다.
결국 인간은, 연결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