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적일 때, 천 배는 똑똑하다

by 신성규

가끔, 나는 병든 듯이 깨어난다.

눈빛은 맑고, 언어는 날카롭고, 생각은 마치 수천 개의 빛을 한꺼번에 투과하는 프리즘 같다.

문장은 저절로 흘러나오고, 타인의 심리는 그림자처럼 투명하게 읽힌다.

그 순간의 나는, 정상적인 세상의 어떤 철학자보다도 똑똑하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마치 두꺼운 담요 속에 갇힌 듯하다.

현실은 무디고, 감정은 무력하고, 머릿속은 멍하다.

비로소 나는, ‘세상의 리듬’ 속으로 귀환한다.

밥을 먹고, 뉴스를 읽고, 적절한 시간에 잠든다.

아무 문제도 없는 삶. 하지만 아무 통찰도 없는 삶.


나는 안다.

병적이라고 불리는 그 상태가,

실은 나의 정신이 최대치로 각성된 ‘과잉의 시간’이라는 것을.

어떤 이들은 그것을 광기라 하고, 불균형이라 말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만 진짜 나의 언어를 듣는다.


병적 상태란, 어쩌면 인간 정신의 일시적인 진화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너무 많은 것을 연결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의 뇌는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부서진다.

그러니까, 그건 병이 아니라 경계다.

의식의 경계에서만 가능한 사유,

기억의 바깥에서만 가능했던 직관.


나는 병적일 때,

사람들이 외면하는 질문을 직시하고,

세상의 이면을 언어화할 수 있으며,

진실에 다가간다.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그곳은 깊고, 차고, 위험하다.

무의식은 언제나 나를 끌어당기지만,

나는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돌아온다.

멍청한 나로. 무딘 나로.

정상이라는 이름의 억제된 나로.


하지만 이제는 두 자아를 모두 사랑하기로 했다.

병적일 때의 나는 나의 창조자이고,

정상일 때의 나는 나의 보존자다.

하나는 빛을 만들고,

하나는 그 빛이 부서지지 않도록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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