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그런 눈을 본다.
정면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어딘가 살짝 비껴있는 눈.
집중하지 않은 듯, 하지만 날 꿰뚫고 들어오는 눈.
연예인들의 얼굴에는 그런 약사시의 흔적이 있다.
정우성, 전지현, 강동원…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그들의 시선은 완벽하게 정렬되지 않는다.
어떤 날엔 왼쪽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고,
또 어떤 날엔 그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해 있지 않은 듯한 착각이 든다.
나는 그것이 시선의 틈이라 생각한다.
그 약간의 어긋남,
그 완벽하지 않은 시선 속에서
사람은 미묘한 불안과 기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력을 느낀다.
완벽한 얼굴은 심심하다.
정확히 마주치는 눈은 너무 정직하다.
모든 게 예측 가능한 얼굴에는 서사가 없다.
그러나 약간 어긋난 눈동자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눈이다.
그 눈은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절반쯤 감추고,
상대가 나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상의 여백 속에,
우리는 빠져든다.
나는 생각한다.
왜 대중은 완벽하게 정렬된 눈보다
살짝의 흐림, 어긋남, 틈새를 가진 눈을 더 오래 바라보는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은 비정합성에 끌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삶은 늘 비스듬히 흘러가고,
감정은 언제나 엇갈린다.
그 어긋남이야말로 진짜 인간의 조건이다.
약사시는 그러니까,
그저 시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고백이고,
‘틈’으로 말하는 방식이며,
‘결핍이 만드는 매력’이다.
나는 그 눈이 좋다.
그 눈은 나에게 질서 바깥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랑,
정답이 없는 예술,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