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참는 아이였다.
눈치를 보았고, 어른스러웠고, 울지 않았다.
말 대신 침묵을 택했고, 감정은 조용히 접어뒀다.
“얘는 참 성숙하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감정 사용 금지 명령이었다.
나는 감정을 삼켰다.
삼키다 못해 그 감정은 어디로 갔을까?
몸으로 갔다. 배로, 목으로, 가슴으로.
말하지 못한 것들이 신체화 증상이 되어 나를 찾았다.
터져야 했다. 한 번쯤은 울부짖고, 부수고, 무너졌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눌렀다.
터지는 것조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품위 있게’ 감췄다.
그래서 더 아팠다.
정신이 울부짖는 대신, 몸이 신호를 보냈다.
그건 이 사회가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고스란히 말해주는 현상이었다.
나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손으로, 귀로, 시선으로 감정을 풀었다.
예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받아주었다.
눈빛으로 말하고, 선율로 울 수 있었던 공간 —
그곳에서만 나는 참지 않아도 되었고, 이상하지도 않았다.
예술은 나의 숨구멍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말할 수 있는 나”가 되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해서, 너무 예민해서,
말하는 순간 다 무너질까 봐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예술은 그런 나를 알아보았고,
말 대신 느낌을 저장할 수 있는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감정을 감춘다는 것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압력밥솥 같은 것이다.
터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누르고 참아온 나에게
예술은 벨브였다.
살아서 흘러나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통로.
나는 그림에서, 음악에서, 글에서 나를 발견했다.
거기선 참지 않아도 됐으니까.
거기선 울어도, 부숴도, 조용히 숨겨도 괜찮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