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천재들은 모두 고통받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똑똑했지만, 누구보다 외로웠다.
그들의 고통은 세상이 주는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절망이었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감각.
아무리 말해도, 아무리 설명해도,
세상은 그들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은 공부를 미친 듯이 했다.
왜냐하면 사회와 연결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상하다고 말했고,
그들은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
그것이 곧 예술이었다.
처음엔 그것이 기쁨이었다.
몰입했고, 자신을 표현했고,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술은 도피처가 되었고,
또 어느 순간부턴 자신의 감옥이 되었다.
즐기던 예술은 점점 자기 증명의 도구가 되었고,
존재를 지탱하는 마지막 남은 구조로 변해갔다.
예술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강박,
천재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자의식,
그 안에서 예술은 족쇄가 되었고,
천재성은 깊게 다쳤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깊게 느끼며,
더 고통스럽게 살아갔다.
천재성은 선물일 수 있었지만,
세상과의 간극이 너무 컸고,
그 간극을 이해받지 못한 채 오래 살아야 했다.
나는 그들이 왜 쓰러졌는지 안다.
세상은 그들의 천재성에 경탄했지만,
그들을 사람으로는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필요한 건 박수도, 명성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는 너의 그 감각을 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천재가 고통받는 건
자신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 예민해서, 너무 많이 느껴서,
그리고 그걸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서다.
예술은 때때로 날개가 된다.
그러나 그 날개가 나를 가두는 새장으로 변할 수도 있다.
천재성은 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 꽃은 스스로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