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꿈을 분석한다.
왜냐하면 꿈은 내가 의식적으로 감추거나 외면한 것을
무의식이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꿈에서 타인을 해쳤다.
이해되지 않는 잔인함,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꿈은 서사였고, 나는 그 서사의 주인공이자 가해자였다.
그러나 이 꿈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 끝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잔인함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깊은 죄책감의 심연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법정을 가지고 있다.
그 법정은 타인이 세운 것도 아니고,
세상의 규범이 정한 것도 아니다.
그건 철저히 나 자신이 세운 윤리의 심판대다.
나는 나를 판단하고,
나에게 형을 선고하며,
꿈속에서조차 나를 처벌한다.
어쩌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타인을 해치지 않았더라도,
내 안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혹은 그 충동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있다.
우리는 늘 “내가 이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불안을 느끼고,
그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렇기에 꿈속에서조차 나는 스스로를 단죄한다.
죽음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
그건 파괴적 감정이 아니라,
죄책감이 품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자기 정화다.
나는 내가 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내 정직함에 더 놀랐다.
죄책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잘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잘못할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동시에 윤리적 존재로서의 자각이다.
어쩌면 나의 꿈은
나의 죄가 아닌
나의 윤리를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꿈을 분석하며 나를 용서한다.
악몽 속 나를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그 꿈을 기록하고, 사유하고,
그 안에서 인간됨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죄책감 없이 사는 삶이 과연 윤리적일 수 있을까?
아니면, 죄책감은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최후의 증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