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이후의 기록

by 신선순

박물관을 떠난 뒤에도 저는 여전히 오래된 사물 앞에 자주 머뭅니다. 다만 이제는 정제된 유리관 안이 아니라, 손이 닿는 거리에서 만납니다.

박물관은 저에게 충분히 깊은 세계였지만, 이제 저는 그 시선을 품은 채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적어둔 메모들을 이제야 다시 펼쳐 보며, 저는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 오늘의 지점에 닿은 걸음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 기억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충만했고, 저를 조용히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사물을 잘 설명하는 일보다, 저는 무엇이 사람을 위로하는지, 그리고 그 위로의 크기는 각자의 마음이 정한다는 사실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국보와 보물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붙잡았던 것은 그 곁에 놓인 일상의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했습니다.

이 따뜻한 위로 앞에서 저는 설명보다 태도를, 정확한 해석보다 곁에 머무는 방식을 기록하고 싶어 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기록자입니다. 다만 이제는 사물의 등급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에 닿는 기록을 남깁니다. 각주에 머물던 시선은 이제 페이지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 이어질 기록은 빛을 잃어가는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 이름은 혁필화(革筆畫)입니다. 그 문화를 직접 이어가고 기록하려는 한 편집자의 다음 페이지입니다.

혁필화를 쓴다는 것은 삶을 건너는 몸의 속도에 더 가깝습니다. 읽히기 전에 느껴지고, 사람 속에서 공감되며,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이기에 누군가의 기록이 필요한 언어였습니다.

어떤 태도로 오늘을 건너고 있는지를

한 단어씩, 한 장면씩 적어가는 일입니다.


『서빙고로 137』의 연재는 여기서 마칩니다.

박물관이라는 세계를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혁필 브런치북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