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춘열 Mar 07. 2019

고양이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한 날

3년 전 겨울의 일이다. 주말에 서게 된 조류인플루엔자(AI) 비상근무. 아직 AI가 전염되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 입구에서 관련 차량을 통제하는 일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인 한 도인이 마을에 은둔하며 살았기에 은재말 또는 은현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아름다운 마을 입구에 있는 다리 ‘은현교’ 위에 이동초소가 있다. 주말이기에 한적하다. 


ⓒ신작단


초소 밖에 잠시 나오니 눈이 호강한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온 마을의 논과 밭 지붕을 하얗게 덮고 있고, 영평천에는 오리와 이름 모를 철새들이 편안하게 떠 있다. 잠시 후, 높은 하늘을 빙빙 도는 매 한 마리에 놀라 새들은 떼를 지어 날아가고 천변의 고라니는 겅중겅중 뛰어다니다 풀숲으로 숨는다. 어중간하게 먹이를 노리다 실패한 매는 힘겨운 날갯짓으로 숲으로 돌아가고 한 무리의 철새 떼가 다시 날아와 물 위에 앉는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비상근무만 아니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다가 반백이 되어버릴지 모를 경치다.

    



초소로 들어가려 하니, 문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날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반긴다. 행색이 형편없는 길고양이이다. 이땐 노란 줄무늬의 고양이를 치즈테비라 부르는 줄도 몰랐다. 문을 열어주니 한 발을 들어 올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녀석 들어오고 싶긴 한데 지켜보고 있으니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먼저 들어가 문을 열어두고 모른 체했다. 잠시 후 살금살금 들어오더니 따뜻한 난로 옆, 의자 밑, 책상 밑으로 여기저기 앉아 보더니 결국은 난로 옆으로 와 앉는다. 기묘한 요가 자세를 취하며 배, 옆구리 등을 혀로 핥으며 몸단장을 한다. 역시 유난스러운 고양이의 몸단장이 그루밍이란 걸 몰랐다. 앞발을 들고 말끔하게 꾸미는 모습을 보니 분홍색 발바닥이 앙증맞다. 마치 자기 전에 깨끗이 씻고 양치질을 마친 것처럼 한참을 단장하더니 제집처럼 편안히 잠든다. 고양이가 하루에 절반 이상을 잔다는 것도 몰랐다. 녀석 편안한 잠자리를 찾았던 모양이다. 집 없는 노숙자에게 따스한 쉴 곳이 간절한 것처럼 길고양이에게도 이 추운 겨울 잠시라도 따뜻하게 머물 곳이 필요했던 게다. 

  

ⓒ신작단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편안히 잠든 고양이를 보며 짬짬이 읽던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이 녀석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들판을 뛰어다니며 쥐라도 잡는 꿈을 꾸는 걸까? 그러고 보니 좀 연한 캐러멜색이지만 호랑이 무늬다. 앞발도 두툼하니 한 사냥할 것 같고. 마침 다 잤는지 눈을 뜨고 등을 곧추 세우며 기지개를 켠다. 맹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고는 문 앞으로 터벅터벅 가더니 손잡이를 한번 바라보고 나를 한번 바라본다. “나가려고?”라고 물으니, ‘알면 빨리 열어나 주지’라는 표정으로 손잡이를 다시 바라본다. 문을 열어주니 훌쩍 사뿐히 뛰어 맞은편 다리 쪽으로 건너간다. 한참을 걸어가더니 한번 돌아봐 주신다. 마치 ‘잘 쉬었소!’라며 인사말을 남기고는 멀리 사라졌다.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와 지난해 장인어른이 아이들 보여준다고 데려와 우리 집에서 이틀 밤을 머물렀던 새끼 고양이 외에 내 곁에서 가장 오래 머문 녀석이다. 어릴 적부터 수족관의 물고기 외에는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강아지나 토끼, 햄스터 한 마리 키우자고 해도 안 된다며 수족관에서 열대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는 알아서 배변도 하고, 깔끔해 키우기도 싶다고 하던데……. 예쁜 고양이 한 마리 키워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딸과의 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