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모으는 중입니다, 아니면 인생 할부?

by 장서나

우리는 왜 이리 열심히 사는가.

지금 우리는 마일리지를 모으는 중일까, 아니면 미래의 나에게 빚을 지는 '인생 할부' 중일까?

지금의 나를 희생한 미래는, 과연 누구의 미래일까.


우리의 삶은 잘 적립되고 있는 걸까.






"미안해, 이번 달은 일정이 너무 빡빡하네. 내가 열심히 마일리지 적립해둘게. 우리 조만간 꼭 만나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미안함을 담아 건넨 말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한 마일리지는 특별한 게 아니다. 집안일을 미리 몰아 해두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 원고를 마감하고, 아이들에게 줄 사랑을 미리 가득 채워두어 '친구를 만나러 나갈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얻어내겠다는 일종의 눈물겨운 선포였다. 이럴 때 나는 신데렐라가 되고, 콩쥐가 된다.


전화를 끊고 문득 멈춰 섰다.

내 인생, 어쩌면 거대한 적립금 시스템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이 피로를 견디면 나중에 편해지겠지.

지금 이 관계를 참아내면 나중에 이해하겠지.

지금 이 일을 해치우면 나중에 수월해지겠지.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위해 현재의 나를 아낌없이 가져다 쓴다. 그런데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친다.


'내가 지금 차곡차곡 쌓고 있는 건 정말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마일리지'일까?

아니면, 미래의 나에게서 건강과 시간을 미리 당겨 쓰고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하는 '인생 할부'일까?'




나는 직함이 많은 사람이다. 수의학 박사, 세 자매의 엄마, 작가, 그리고 강사. 어쩌면 이 단어들만 보다라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아니 '치열하게' 마일리지를 모으는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강의 자료를 만들고, 세 딸의 육아와 교육까지 관리하는, 그야말로 '원더우먼'이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등 뒤에 날개가 달고 연필을 들고있는 '적립 요정'이 내게 다가와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고객님, 체력과 감정, 시간은 적립 품목이 아니라 소모품입니다. 현재 고객님의 마일리지는 만기 시점 전에 이미 소멸될 예정이며, 오히려 미래의 행복을 오늘로 당겨 쓰는 ‘인생 할부’가 청구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마일리지를 쌓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미래의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큰 문제이지 않은가. 적립 방식을 새롭게 점검해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끊임없이 나를 소진하는 방식이 '어른답다'고 느끼는 걸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어른들의 지독한 적립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대대적인 적립 방식 개편이 필요하다.


정말 모든 고생은 미래의 보상으로 환전되는 걸까.

버텨낸 시간은 모두 보상이 될까, 아니면 그냥 지나간 시간이 될까.

참아낸 감정과 미뤄둔 휴식, 갈아 넣은 체력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나 할까.

혹시 우리는 쌓고 있다고 믿는 순간마다 조금씩 빚을 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더 잘 적립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안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 아예 적립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이야기,

어떤 날들은 적립보다 소모가 정직한 선택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려 한다.


지금의 나를 모두 쓰지 않아도 충분히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미래를 핑계로 현재를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어쩌면 필요한 건 더 많은 적립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걸 나 자신에게, 그리고 비슷한 얼굴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이제부터 무작정 모으는 삶이 아니라,

어디에, 무엇을, 왜 적립하고 있는지 묻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이 책은 그 질문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마일리지를 모으는 중인 당신에게도,

이 질문이 닿기를 바라며.







[철학자의 노트]

먼 미래를 목표로 삼아 인생을 설계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손실입니다. 목표를 미루다 보면 우리에게 오는 모든 날을 빼앗기고,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래에 대한 기대, 즉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는 운명의 손에 있는 것을 바라며 자신의 손안에 있는 것을 놓아버리는 일입니다. 당신은 어디를 보고, 어디로 손을 뻗고 있습니까? 앞으로 올 모든 것은 불확실합니다. 현재를 사십시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현대지성, 2025, 제9장 중에서

세네카는 2,000년 전에도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미래라는 불확실한 통장에 마일리지를 쌓느라

'오늘'이라는 유일한 현금을 탕진하지 말라고 말이죠.

지금 이 순간 내 손에 쥐어진 '현재'라는 진짜 자산을 누리라

현자의 일침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