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마일리지: 피로를 적립금으로 착각할 때

by 장서나

"특별히 불편한 곳 있으세요?"

몇 년 만에 방문한 마사지샵에서 마사지사님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그게… 특별히 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목이 너무 아파서 두통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고요. 어깨도 뭉쳤고요. 허리랑 고관절도 좀 아프고 몸이 너무 부어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소화불량, 손가락, 손목 통증, 손 부종, 앉았다가 일어나면 어지러움, 저녁마다 오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새해가 밝았는데. 2026년을 산뜻하게 맞이하지 못하고, 새해가 밝는지 어쩌는지 새로운 맘을 먹을 새도 없이 육체의 고통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새해 기도 제목 베스트는 건강


해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나마 새해 소원을 빈다. 그때 단연 1위를 놓치지 않는 건 '가족 건강'이다. 그다음은 '자녀 기도'라고 한다. 그런데 소원으로 '건강'을 빌면서, 정작 자신의 건강은 잘 챙기고 있는 걸까. 머리로는 '건강이 최고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일상에서는 건강이 가장 우선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교적 건강할 때는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그제야 건강을 신경 쓰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런데 정말 몸이 '갑자기' 안 좋아졌을까? 아닐 거다. 조금씩 조금씩 이곳저곳이 안 좋아지는데도, 그저 조금 불편해지는 거라 여기며 버틸 때까지 버티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어머님께 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잠을 많이 자고 충분히 자는데도 회복이 안 된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이제 중년이잖니. 잠 잘 자는 걸로 회복 안 돼. 몸에 좋은 걸 먹고, 운동도 해야지."

어머님은 '이제 너도 올 게 왔구나' 하듯, 매우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그제야 평상시 전화할 때마다 올레길을 걷고 등산하고 계셨던 게 생각났다. 친정엄마도 시간을 쪼개 매일 헬스장에서 달리기 운동을 꼬박꼬박하셨는데, 그게 다 살려고 하는 운동이었구나 싶었다. 살려고 하는 운동이라니. 맞는 말이긴 한데, 왠지 서글펐다.


며칠 동안 몸을 사리며 조금씩 소화 잘 되는 음식으로 먹고 잠도 때때로 푹 잤더니, 새해가 몇 주나 지나고 나서야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좀 살만하니 운동 생각이 또 슬그머니 들어간다. 아, 운동! 가야 하는데! 인간이, 아니 나란 인간이 이렇게 간사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진짜 이번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부터 꼭 시작해야지(진짜 꼭!).



피로는 성실의 훈장?


몸이 가뿐하고 개운했던 적이 언제인지 생각나는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피로해 보이지 않고 생기가 넘치면 회사 동료나 상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왜 우리는 피곤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피로를 성실의 훈장처럼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눈 밑의 다크서클, 뻣뻣해진 목과 어깨가 노력의 증거인 양, 체력이 고갈되어도 내일의 체력을 당겨쓰며 버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에, 내가 해내야 하는 과업 앞에, 너무도 당연하게 내일의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 또다시 '적립 요정'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고객님, 이건 적립이 아니라 고금리 사채입니다. 이자가 복리로 붙는 아주 무서운 놈이죠."

이자는 면역력, 정신 건강, 노후 관절, 수명….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포션이 아니다. 그건 미래의 내가 써야 할 체력을 오늘로 강제 인출해 오는 '가속기'일 뿐이다.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나를 소진했는데, 그게 내일의 나를 '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정신 차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어른이니까 피곤한 거라고, 어른은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매우 어른답지 못하게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날 하루치만큼의 체력을 통장에 입금받는 건지도 모른다. 정직하게 그 안에서 쓰고 밤이 되면 잠으로 다시 채워 넣는 것. 그것이 가장 건강한 '체력 적립'의 방식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주어진 일을 처리해 내기 위해, 혹은 갓생(God-生)을 살겠다는 의지로 우리는 너무 자주 '인출' 버튼을 누르고 있다. 문제는 통장이 비었을 때 발생한다. 더 쓸 체력이 없는데도 멈추지 않고, '내일의 체력'을 미리 당겨쓴다. 그렇게 당겨쓴 체력은 이자들을 꼬박꼬박 챙겨갈지도 모른다.



이제 '성실한 과로'라는 이름의 가짜 마일리지를 거부하기로 했다. 통증은 내 몸의 긴급 사이렌이니까. 몸이 마지막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내일의 체력을 담보로 한 무리한 할부를 당장 멈추라고.

오늘 나에게 허락된 에너지를 소중히 여기고, 내일의 나에게 빚지지 않는 삶을 연습해 보려 한다. 더 이상 고금리 사채업자에게 내 소중한 행복과 건강을 이자로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어른다움이란 몸을 혹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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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노트]

일반적으로 우리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좌우된다. 건강은 모든 것을 즐기는 원천이며, 건강이 없으면 그 어떠한 외적인 자산도 즐길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다른 주관적·정신적 자산, 감정과 기질 같은 것조차 질병으로 약해지고 위축되고 만다.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사람들이 서로의 건강 상태를 묻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건강이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가장 어리석은 짓은 일이나 출세, 학업, 명예 혹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 육체적 쾌락이나 순간적인 기쁨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건강이 있어야만 그 뒤에 다른 모든 것들이 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2023, 1부 2장 중에서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90%가 건강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건강은 '모든 가치 앞에 붙는 숫자 1'과 같습니다.

그 뒤에 붙는 부, 명예, 성취라는 '0'들은 1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죠.

오늘 우리가 성실함이라는 이름으로 내일의 체력을 당겨쓰는 행위는,

결국 뒤에 붙을 '0'들을 위해 가장 소중한 '1'을 깎아 먹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성실함의 증거라 믿으며 견딘 그 피로는,

정말 당신의 미래를 보장해 주고 있나요?

당신의 체력 통장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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