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감정을 접어 두고 있지는 않은가.
말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넘긴 마음들은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
나는 내가 내 감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스레드에서 오하루 코치님의 <90가지 감정 찾기표> 무료 나눔을 보았다. 이메일만 입력하면 끝이니, 안 받아볼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중요한 것은 감정을 느낀 후 '어떻게 행동하느냐'입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는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나열되어 있었다. 단순히 감정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함께 적혀 있었다. 가만히 단어들을 훑어보는데, 한 단어가 와서 나를 툭 건드렸다.
"두려움. 어떤 대상이 무서워서 불안하거나 염려스럽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나에게 있는 것인데도 있는지 몰랐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듯한 이상한 감각이었다.
이어지는 페이지에서는 그런 감정이 어떤 상황 때문에 생겼는지 생각해 보고, 내 마음을 발견해서 적어보는 실전표가 있었다. 원래는 굳이 적어보지 않지만, 왠지 적어 보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몸이 갑자기 너무 아프니까 두려웠다.
두려움 뒤에 숨겨진, 삶에 대한 강한 욕망과 일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욕구를 느꼈다.
두려워 하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내 몸을 돌보고,
막연한 불안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지금처럼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야겠다.
정답을 빨리 찾으려 하지 말자. 애초에 정답도 없다.
하나님께 더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자."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세 아이 엄마로서, 무거운 삶일지라도 유쾌하게 살아내고 싶은데, 아픈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컨디션이 너무 저하되는 상황이 지속되자,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더군다나 언제까지 아플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쉬어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내 감정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었다.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되니, 내 감정을 비로소 안아줄 수 있었다. 코치님의 말이 그제야 깨달아졌다.
"지금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으면 신기하게도 답이 보입니다.
모호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질서가 잡힙니다."
흔들린 마음의 진짜 이유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을 앞두고 한 친구에게 호된 원망을 들었다. 모임 준비에 소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나의 하루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과 토요일에 만나기 위해서는 친정에 아이 셋을 맡겨야 했고, 일정과 상황이 맞아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임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임을 준비하기 어려웠을 뿐이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내게 "나도 바빠."라는 친구의 화 섞인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입을 닫았다. 갑자기 화를 내는 친구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혼자 너무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갔다. 내가 그냥 그렇게 이해해버리면 상황이 마무리되니까.
그런데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화를 내면 불편해질 것 같아 넘어갔지만, 친구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구차한 상황이 서럽게 느껴졌다. 친구가 던진 '화'라는 돌은 평온하다고 느꼈던 내 감정에 큰 동요를 가져왔다. 그 감정을 외면하기에는 그 파동이 너무 깊고 아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이 들었을까?
정말 오롯이 친구 때문에 생겨난 감정인가?
내 감정이 이렇게 쉽게 동요하는데, 건강한 감정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어쩌면 친구가 내뱉은 말이 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약한 고리를 건드린 건 아닐까 싶다. 친구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화를 낸 것에 상처받은 건 맞지만, 지금의 내 현실을 꼭 다른 이가 알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해 타인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흔들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수록 쌓이는 것들
인내라는 이름으로 '감정 마일리지'를 적립할 때마다, 이 적립금이 나중에 '평온'으로 환전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내 아픔을 숨긴 채 억지로 쌓은 마일리지는 결국 '우울'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만히 귀 기울였을 때, 내 영혼이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좀 들여다보라고, 내 스스로가 가장 먼저 알아주고 안아줘야 한다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미덕일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이 비참함으로 얼룩졌다면 그건 건강한 적립이 아니다. 이제 마일리지를 쌓기보다, 나를 먼저 인정해 주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살다 보면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만나게 된다. 때론 내가, 또 때로는 다른 이가 가져온 부정적 감정은 서로 엉겨 붙어 어떤 게 원래 누구 것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는 감정을 건강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기보다는, 상황을 그저 무마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곤 한다. 그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일 수도 있고, '어차피 또 그럴 텐데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 보니,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는 것조차 배부른 소리처럼 여겨져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냥 넘어가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넘긴 감정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내면의 어딘가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속 저장고에는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어른스러운 인내심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적립하던 그 마일리지는, 사실 '감정의 부채'였던 셈인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반드시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타인과의 평화를 위해 나 자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내 마음의 주인인 '나'를 스스로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에,
적절한 목적과
적절한 방식과
적절한 정도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를.
요즘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괜찮은지, 아니면 그냥 넘기고 싶은 건지. 감정을 적립하는 삶보다 감정을 제때 정산하는 삶이 더 건강하다는 걸 조금 늦게 배웠다. 아직은 어렵지만.
감정 마일리지, 그 불편한 진실
"축하합니다, 고객님! 오늘도 감정을 꾹 참으셨네요? 덕분에 '성인군자 마일리지' 100점이 적립되었습니다!"
귓가에 속삭이는 적립 요정의 목소리는 달콤하다.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참을 때마다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평온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요정이 내민 정산서의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특약 사항'이 적혀있다.
* 본 마일리지는 고객님의 '마음 영토'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대가로 지급됩니다.
* 상대의 무례함을 방치할 시, '나는 이 정도 대우받아도 괜찮다'라는 메시지가 무의식에 자동 주입됩니다.
* 감정 정산을 미룬 기간만큼 '자아의 상실'이라는 연체 이자가 붙어, 결국 당신의 영혼에 '우울'을 청구합니다.
내 감정을 덮어 둔 대가로 '성인군자 마일리지'가 적립되어도, 결국 내 '마음 영토'를 온전히 지키지 못할 수 있다니. 내가 '나'를 잃으면 마일리지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군가의 무례함 앞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입을 닫았을 때 느꼈던 그 속상함은, 사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에 대한 영혼의 슬픈 고백이었다. 진정한 인내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먼저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감정은 어디로든 흘러가야 한다. 나도 모르게 참았던 감정이 짜증이 되고, 무기력이 되고, 이유 없는 피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아무 데나 쏟아내는 것도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내 감정을 잘 살피고,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자.
"이 감정은 지금 나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숨겨진 고통을 더 키우는가?"
화를 내지 않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기지는 않기.
폭발하지 않더라도, 조용히 삼켜 버리지는 않기.
감정을 제때, 적당히, 적절히 써서 나에게 독이 되지 않게 하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몸이 아프거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내면의 괴로움으로 인해 감정의 방어벽이 얇아진 상태에서, 누군가 그 아픈 곳을 건드렸을 때 일어나는 동요는 인간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건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삶이 매우 고단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내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와 '대상'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순간, 감정의 주도권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도 모르게 흘리게 된 눈물은, 사실 나를 무시하는 상황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려 한 간절한 호소였다. 무조건적인 인내가 미덕이라는 환상을 깨고 내 안의 고통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내 마음의 영토를 지켜내는 탁월함의 시작이다.
[철학자의 노트]
우리는 감정 그 자체만으로는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판정받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탁월함이 결정된다. 감정은 우리를 흔들어놓지만, 이성은 그 감정이 일어난 적절한 이유와 대상을 찾음으로써 우리가 감정에 휩쓸리는 자가 아닌, 감정을 다스리는 상태에 머물게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대지성, 2022, 제2권 제5-6장 요약 및 재구성
사람들은 괴로울 때 분노한다. (…) 그래서 병에 걸린 자들, 가난한 자들, 사랑에 빠진 자들, 목마른 자들처럼 어떤 욕구가 있는데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는데, 현재 그들이 처한 처지를 하찮게 여기는 자에게 특히 더 분노한다. (…) 모든 사람은 각자 현재 겪는 괴로움 때문에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군가가 그 괴로움을 건드렸을 때 분노하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현대지성, 2020, 제2권 제2장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억누름'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였습니다.
감정표에서 내 감정 단어를 찾아내고 가슴이 저릿한 것은
모호했던 고통에 '이름'을 찾아주어 질서를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철학적 치유의 순간이자 자기 인식 회복의 시간입니다.
감정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나를 지우기보다,
내 감정의 이유를 정확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것이 타인에게 내주었던 마음의 주권을 되찾는 가장 품격 있는 방법입니다.
오늘 당신의 영혼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나요?
억지로 쌓은 감정 마일리지로 마음의 도화지를 검게 칠하기보다,
정직한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세요.
당신의 영혼이
타인에게 침범받지 않는,
당신만의 온전한 빛깔로 선명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