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마일리지: 당신의 관계는 '안녕' 하십니까

by 장서나

김애란의 단편소설『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인공은 홀로 사는 40대 중반 '은미'다. 그녀는 온라인 영어 화상 수업 교사(로버트)와 '안녕'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과거의 연인 '헌수'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를 간병하며 보낸 수년의 시간 동안, 그녀의 세계에서 자연스레 밀려났던 사람이다.

은미는 간병에 매여 인간관계를 전혀 챙기지 못했던 고독의 한복판에서 헌수를 그리워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긴 시간 엄마 옆에 머물며 내가 가장 그리워한 사람은 헌수였다. 나와 결혼할 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 그랬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완전한 개인의 자율을 지향하는 초솔로사회(Hyper-Solo Society)라고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게 '1.5가구'이다(트렌드 코리아 2026). 가족과는 가까이 살며 필요할 때 교류하고,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을 키우기도 한다. 또는 '동거 계약서'를 작성하고 룸메이트와 같이 사는 경우도 많다. 코리빙 하우스에서 여럿이 공용 공간을 공유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이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사는 이유는 뭘까. 고물가라는 경제적 압박도 크지만, 무엇보다 고독과 불안이라는 근원적인 추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은미는 고독함 가운데 '자신과 같은 고독을 겪은 사람이라서' 헌수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헌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은미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엄마를 간병하며 그녀의 청춘이 어떻게 마모되어 가는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감정과 처지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이였다.

관계는 그렇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관계에 지치기도 한다.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얼마나 잘 해주었는지, 함께 보낸 시간이나 주고받은 호의의 양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공감을 받고, 또 공감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이런 관계가 쪼그라들면 어떻게 될까.



관계가 쪼그라들면 생기는 일


소설 속 주인공 은미는 로버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수업에 들어오며 잘 어울리는 스웨터를 잘 갖춰 입은 모습에, 은미에게 예의를 지켜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년간 그런 존중에 좀 목말라 있었다."라며 로버트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을 의식하며 긴장한다. 로버트와의 수업 마지막 날, 은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시절 누군가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해서, 긴장과 웃음, 안부를 나눴다 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지. 직장에서는 그 모든 게 지겨웠는데.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 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 나게 매혹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들이. 그래서 그 일부를 한동안 내준 로버트가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번쯤 캐나다에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로.

전에는 지겹고 부담스러웠던 인간관계였지만, 그러한 관계조차 제한된 상황에서 그런 사회적 감각이 그리워진 것이다. 정말 저럴까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그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엄마들' 말이다.


특히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경우에 이러한 관계 제한이 더 크게 다가온다. 많은 경우에, 임신 기간에 하던 일을 내려놓고 집에서 쉬게 된다. 여기서 1차 단절. 그리고 출산 후에는 산후조리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외부와 차단된 시간을 보낸다. 또다시 단절이다. 아기와 단둘이만 있는 시간, 엄마는 아기에게 말을 걸어주지만 아기는 답할 수가 없다. 아기와 온종일 있다가 대화가 통하는(누구든 다 아기보다는 잘 통할 것이다) 어른과 대화했을 때의 시원함과 반가움은 정말로 엄청나다.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적절한 관계'와 '적절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관계가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되고 작은 것 하나에 흔들릴 수 있다. 소설 속 은미가 스스로 인정하듯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로버트에게 사회적 언어를 기대하게 되었지만, 이는 사랑이 생긴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관계의 체감 온도가 왜곡된 상태였을 것이다.


관계는 감정을 주고받는 대상이지만, 사회적 감각의 기능을 맡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버트는 이러한 관계 기능을 임시로 맡아준 사람에 가깝다. 기능의 공백을 채워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관계가 필요하다


나는 어떤가.

적절한 관계를 잘 맺고 있는가.

내 관계의 밀도는 어떠한가.


관계에 만약 마일리지가 있다면, 관계 마일리지는 상대에게 나의 시간, 감정, 에너지를 주면서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일리지를 쌓게 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함으로, 배려가 아니라 무심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나아가서 혼자 적립한 관계 마일리지와 혼자서 커져 버린 기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기울어진 관계에서 관계 마일리지의 적립 속도는 빨라진다. 문제는 상대가 그 마일리지를 같은 통장에 쌓고 있었냐는 것이다. 관계는 공동 계좌가 아니다. 각자의 통장에 각자의 기준으로 쌓인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한쪽의 적립만 늘어나고 다른 한쪽은 피로해지기도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쌓은 마일리지는 상대에게는 '받은 적 없는 대출'과 같다. 내가 '서운함'의 이자를 청구해 봤자, 상대는 왜 자신에게 빚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애초에 대출을 신청한 적도, 승인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관계는 나를(혹은 상대를) 소모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유지되고 있는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때로는 내가 또 때로는 상대가 서로를 소모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너'가 되기도 하고, '너'가 '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누구도 탓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뿐만 아니라 관계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정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산은 서로에게 아직 말할 힘과 여유가 남아있을 때 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관계를 정산한다는 것은 관계를 계산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다. 서로를 무겁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볍게 하는, 이해로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관계 마일리지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지의 다른 이름이다. 진정한 관계는 마일리지처럼 쌓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당신의 관계는 안녕한가요


안녕하다는 건 단순히 문제가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나는 이 관계에서 말할 수 있는지, 불편함을 느낄 때 조심스럽게라도 꺼낼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혹은 나에게 끊임없이 더 잘해야 한다는 긴장을 요구하는 관계는 아닌지, 상대는 바라지 않는데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한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사람이란 것이 워낙 복잡한 생명체라 순탄한 관계만 겪어 온 이는 없을 테니까. 집에서 조용히 내 할 일 하는 게 가장 편하고, 나와 딱 맞는 사람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쨌건 섞여 살아야 했다. 지치고 지긋해도, 어딜 가나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위한 일이라 결국 또 부대끼며 지낸다. 줄곧 선택하며 산다. 불편을 감수하고 함께 지낼 것이냐, 불편을 회피하고 혼자 고독할 것이냐.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것도 그랬다. 암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고 가족이라 해도, 타인과의 교류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서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거치고, 말을 내뱉고, 행동하는 힘이 모두 나를 소진하는 일이라 얼마간의 충전이 필요했다. 그러나 또 슬그머니 사람 곁으로 향하는 것은 아마 좋은 관계로부터 쌓이는 사랑과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욕심과 더 행복하게 지내고자 하는 소망의 근간에도 다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람에 의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니까. 어렵고 혼란해도 계속해서 부딪치고 해결하며 살아간다. 소란함과 외로움 정도는 단번에 상쇄할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겪고 느낄 수 있는 배움이고 온정이었다.

─ 일홍,『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크럼, 2024, 4부 중에서


결국 우리가 타인이라는 '에너지 소모'를 감수하면서도 또다시 곁으로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따스함이 있기에,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기에. 그래서 어쩌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선택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닿지 못할 생각과 감정을 기꺼이 만나겠다는 선택.



소설 마지막 대사처럼

‘안녕’이라고.

부디 평안하라고.


온기 가득 담아

인사하고 싶다.


당신의 관계가,

그리고 당신의 하루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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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노트]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들이 서로의 체온을 이용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가까이 모여 앉아 한 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어서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고, 그러자 가시가 다시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이렇게 그들은 두 가지 시련 사이를 오가다가 마침내 상대방의 가시에서 안전한 적당한 거리를 발견한다.
인간의 공허함과 무료함에서 생겨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 불쾌한 일과 참을 수 없는 결점으로 인해 서로 멀어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들은 서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존중과 예의다. 그리하여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에게 '거리를 지켜라(keep your distance)'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서로 따뜻해지려는 교류의 욕망은 충복하면서도 가시에 찔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내적인 따뜻함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통과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2023, 2부 8장 중에서

사실 제일 어렵고 내 맘 같지 않은 게 관계이고

할 말이 정말 많은 것도 관계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의 모습을 통해, '적당한 거리'를 강조합니다.

그 거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존중과 예의입니다.

내면의 따뜻함이 충분한 사람일수록 고독을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관계의 시작은 타인 이전에 자신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충분히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찾아

그 따뜻함을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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