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에 물린 것보다 정확히 10배 더 가렵고 고통스러워 밤새 잠을 설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가 정신없이 긁다 피도 봤다. 물린 뒤엔 물집이 잡히고 조금 지나면 그 물집이 터져 진물이 줄줄 흐르는 건 예사였다. 결벽증 걸린 것처럼 샤워, 빨래를 미친 듯이 하고 청소기도 틈나는 대로 돌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매일 정체모를 것에 시달리며 내 몸뚱이 중 제일 자신 있던 하얗고 가는 발목은 무식하게 긁다 생긴 보기 싫은 흉터로 매워졌다. 무려 26군데나...
그렇게 일주일을 넘게 고생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벼룩에게 물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응? 지금 시대에 벼룩?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벼룩을 뉴질랜드에서?
오래된 카펫, 그리고 고양이. 게다가 그다지 청결하지 않은 부엌...
벼룩의 천국이 되기에 딱이었다. 어쩐지 이 집 고양이들이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 털 손질을 열심히 하고 긁기도 심하게 긁더라니... 벼룩 때문에 그랬던 거구나! 불쌍한 것들...
"그래!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이 몹쓸 벼룩을 잡아주겠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분노의 검색으로 벼룩 퇴치에 좋은 방법을 알아냈다. 벼룩은 마늘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피 빨아먹고 마늘 싫어하는 흡혈귀와 특징이 같다. 마침 1달러에 마늘 한 망을 사두었던 터라 열심히 마늘을 까서 잘게 썰어 벼룩이 있을 만한 곳곳마다 뿌려놓고 내 발에도 즙을 살짝 발라두었다. 벼룩 때문에 고생하는 고양이들도 외면할 수 없어 애들이 싫어하든 말든 작은 마늘 조각들을 온몸에 붙여주고 나니 말리의 까맣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털 위에 흩뿌려진 작은 마늘 조각들은 꼭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예뻐 보였다.
태어나서 마늘이 그렇게 아름다워본 적은 처음이었다. 말리의 검은색 털과 밝은 노란색 마늘 조각의 훌륭한 색상대비로 잠시나마 벼룩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별이 빛나는 밤을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럴 땐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단순한 내가 좋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으니^^
대야에 물을 한가득 떠놓고 스탠드를 그 위에 켜 둔 채 두면 밤새 벼룩이 불빛으로 뛰어들다 물에 빠져 익사하는 환경친화적인 퇴치방법도 써보았다. 결과는 성공적!
그러나 벼룩만 들끓는 집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파리가 많지?"
아침 일찍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난 애니의 집엔 고양이만 남아있는 게 아니었다. 대규모의 파리 부대도 함께였다. 원인 분석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부엌의 커다란 쓰레기통. 어린애 하나가 들어갈 수도 있을만한 크기의 더러운 쓰레기통 주변에는 파리들이 날아다니며 그들만의 천국에서 댄싱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 흥을 깨서 미안했지만 일단 쓰레기통부터 밖으로 치우기로 했다. 주차장에 쓰레기통을 갖다 놓고, 끈끈한 부엌 바닥을 쓸고 닦은 뒤, 쓰레기통 옆에 자리했던 고양이 밥그릇도 깨끗이 닦아 말려놓았다. 그래도 파리는 들끓었고 대청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도 했다. 한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 청결한 부엌이 결코 아니었지만 파리 때문에 힘들여가며 대청소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에너지 소모야. 체력도 바닥이면서. 있는 동안 그냥 대충 살자."
이렇게 마음 정하고 이틀이 지난 늦은 밤, 나는 보고야 말았다. 대추알 만한 갈색의 윤기 나는 무언가가 뒤뚱거리며 부엌 쪽으로 기어가는 것을...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 육중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는 꼴이란..!
우리나라 바퀴벌레와는 확연히 다른 여유 있고 느려 터진 모습에 (바퀴벌레도 국민성과 연관이 있나 보다)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역겨움이 느껴져 부엌 대청소를 결심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퀴만 나타났다 하면 손바닥, 발바닥, 슬리퍼 할 것 없이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때려잡아 납작하게 만들던 용맹의 상징 우리 엄마도 그리웠다.
나는 일단 바퀴벌레를 모른 척하고 쓰고 있던 노트북으로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가버리겠지. 내일 대청소하면 깨끗해서 다른 데로 갈 거야.'
몇 분 뒤 내 예상대로 바퀴벌레는 부엌을 나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얼른 가라, 가!'
곁눈질로 바퀴를 찾아보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 뭔가 움직이는 듯한 이상한 느낌에 가슴을 내려다보니 믿을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내 생애 충격사건 Top 20에 들어간다.
바퀴벌레가 배부터 유유히 오르며 내 몸을 등반하고 있는 게 아닌가!!!!
"꺄아아악!!!!"
미친 듯 소리 지르며 지붕도 뚫을 기세로 점프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살풀이하는 무당처럼 난리를 치니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루카도 깜짝 놀라 깨고 바퀴벌레도 내 오두방정에 놀랐는지 어느새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잡것이 왜 하필 내 몸으로 기어올랐는지 정말 모를 일이지만 그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청소의 신으로 거듭나 다음날 애니네 부엌을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필사적으로 치웠다. 다시는 바퀴벌레의 에베레스트 산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저 자리에서 바퀴벌레에게 등반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루카는 나를 싫어하면서도 컴퓨터 옆이 따뜻해서인지 저녁엔 꼭 곁에 붙어있었다.
애니네 집에 머무는 6주 동안 바퀴벌레는 냉장고 안, 냄비받침 등지에서 이따금씩 발견되었다.
파리는 참다못해 신문지를 말아 살생을 범하고 말았지만 20~30마리 남짓되던 숫자가 서너 마리로 줄어 산만함이 많이 줄었다.
벼룩은 그 이후로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 셋은 틈만 나면 물린 곳을 동시에 벅벅 긁는 웃지 못할 진풍경을 연출하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눴다. 그 벼룩 물린 흉은 6개월이 지나도 남아있을 정도로 지독했다.
그리고
빈대와 이도 있었다.
애니가 내준 부부의 침실에서 며칠을 보냈지만 침대 위에서 빈대를 발견한 후 아이들의 좁아터진 이 층 침대로 도망가 잠을 자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말로만 듣던 벼룩과 빈대를 뉴질랜드 평범한 가정집에서 보다니 실로 놀랍지 않은가!) 아이들의 예쁜 사진이 놓여있던 거실 선반 위에 숨겨져 있던 머릿니 약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6주 후 가족들이 돌아왔을 때 세 아이들 긴 머리가 레게 스타일로 대변신이 되어 있었다. 아주 촘촘하고 정교히 땋아진 머리로 머릿니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이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 될게 분명했다. 나는 머리가 참 예쁘다고 말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그 머리 언제 감을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머리를 절대 감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온 집안이 너무나도 깨끗하다고 감격을 하며 내게 발리에서 사 온 선물을 한 아름 안겨준 애니는 몇 주 후 짧은 국내여행을 떠난다며 다시 한번 하우스 시팅을 해줄 것을 강력히 부탁했다. 아름답고 호적한 동네에 위치한 이 집도 좋고, 호탕하고 재미있는 애니 부부도 좋고(비록 세 딸들과 고양이 두마릴 키우느라 정신없어 청결과는 담을 쌓은 부부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작은 것에 감동하고 인심 후한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이들도 예쁘고, 고양이들도 사랑스러웠지만 '해충퇴치사'라는 극한 살생 직업을 다시는 갖고 싶지 않아 다른 계획이 있노라 완곡히 거절했다. 그 집에서 벌레들과의 전쟁을 벌이고 난 이후 나는 깔끔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제 해충박멸에 도가 텄다. 당시엔 하루 종일 빨래하고 청소하고 벌레 잡느라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그저 웃음 짓는다.
뉴질랜드에 해충 모기는 없었지만 직접 그린 모기 요정을 올려봅니다. 체리 요정인데 날개가 모기 같죠? 뉴질랜드에서 그려 팔았습니다. 2008년 作
뉴질랜드에서 지내던 2013년-2014년에 기록해둔 노트를 참고해 쓴 글입니다. 충격적이지만 재미있는 실화들이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