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산책시간 그리고 오일파스텔과 색연필로 그린 제주도 고양이 그림
집시처럼
방황하며 지구 위를 떠돌다
제주에서 머물게 된 지 1년이 넘었어요.
처음 1년은 창문을 열면 남의 집 뷰가 보이던
회색빛의 상업지구에 끼여 살다
석 달 전 드디어 신시가지 외곽으로 이사를 와
매일 전원 풍경을 만끽하며
진정한 제주살이를 하고 있어요.
창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오션뷰.
섶섬
문섬
범섬이
매일 나를 반겨요.
햇볕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바다 위에
오밀조밀 자리한 작은 섬 세 개가 보이는
이 전망 좋은 방에서
제주살이를 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에요.
지난 11월 초
광고를 보고 가장 먼저 집을 보러 왔다가
무수한 경쟁자를 뚫고
이 집을 차지했어요.
어떤 분은 육지에서 부동산 광고만 보고
황급히 계약을 원했는데 부동산에서 거절을 해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고 저녁에 집을 보고 나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었대요.
그런데 그분보다 한 발 앞서
집을 보자마자 계약한 얌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저였어요. 이 글을 빌어 그분께 사죄드려요.
오로지 전망 하나 보고 계약한 집이라
관공서를 비롯한 주요 시설과 멀어
면허증도 없는 기계치 뚜벅이는 걷느라 지치지만
(다행히 버스정류장이 2분 거리에)
살면 살수록 좋은 점을 계속 발견 중이에요.
알고 보니 몇몇 고양이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라는 사실이
고양이에 미친 여자를 설레게 해요.
창문을 열면 들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는
밭이 보이고 (꿩이 매일 오는 밭)
돌담길을 걷다 보면 여길 봐도 고양이
저길 봐도 고양이 세상이에요.
제가 사는 5층 건물에서 내려와
내리막길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돌담과 귤나무가 오밀조밀 어우러진
제주도만의
사랑스러운 풍광이 펼쳐져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정겨운 돌담길을 걷다
마주친 그대를 보고 찌릿했어요.
콧수염 고양이!
어쩌면 이리도 절묘한 곳에
콧수염처럼 검은 털이 났냔 말이냐옹!
자칫 밋밋해 보일 수도 있었던
젖소냥의 뽕주댕이가 독특한 무늬로 돋보이죠?
코믹한 외모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언보다 더 웃긴 이 길냥이를 나는
"콧수염"이라고 불러요.
진지한 표정도 저 콧수염 무늬 덕분에 웃겨 보여요.
알고 보니 이 집 맞은편 집이 고양이 급식소예요.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 대문밖에 내놓은
물그릇과 사료그릇이 있는 곳으로
콧수염이 자리를 옮기는 걸 보고
사료그릇에 간식을 조금 더 뿌려주니
신나게 먹네요.
애옹~
어디선가 줄무늬 고등어가 나타나
애옹 거리기 시작했어요.
고양이 맛집에서 걸어 내려오자
빨간 동백꽃과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돌담아래에서
저를 불러 세운 할머니가 있었어요.
이 할망은 기력이 좀 딸려 보이는 자태가
안쓰러우면서 귀여우셨어요.
가래가 들끓는 목소리로 저를 불러 세우던 할망은
연식이 조금 있어 보이셨지만
제가 준 까까를 잡숫고는 환장하시더니
더 달라고 까만 버선발로 쫓아오셨어요.
밑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널따란 잔디밭이 딸린 단독주택이 있어요.
제주도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지붕과
드넓은 잔디밭이 눈에 확 띄는
이 아우라가 엄청난 집은 동네의 명물이에요.
검은 아기 고양이는 계속해서 이곳저곳으로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졌어요.
그러는 동안 할망고양이는 저를 쫓으며
과자를 어서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어요.
홀린 듯 검은 고양이를 쫓다 예쁜 집을 발견했어요.
직접 그린 벽화로 아름답게 꾸며진 집이었지요.
파란 지붕과 푸른 하늘이 잘 어우러져
청량하면서 아기자기한 느낌이에요.
길고양이를 만나며
제주도의 숨어있는 아름다운 집들도 발견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행복해진 마법의 산책시간이었어요.
며칠 후 도서관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길에
고양이 소리를 들었어요.
애옹~
터줏대감인 콧수염냥은 보이지 않고
수줍음 많은 애옹이가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어요.
애옹이 사진과 비디오를 수십 편 찍고
행복감에 젖어있을 때
애옹이와 멀지 않은 곳에
새의 깃털들이 빨간 열매와 함께
낭자하게 흩어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작은 새 한 마리가 열매를 따먹으러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죠.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고양이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작은 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세상의 쓰라린 법칙에
마음이 아파왔어요.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며
고통을 겪었을 새를 애도하다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를 보게 되었어요.
돌담 위를 유유히 걸어가는 흑곰을 따라가다
결국 놓치고 마는데...
그 순간
그렁그렁 가래 끓는 목소리의 할망이
돌담 다른 편에 서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꺄아 할망~ 잘 있었어?"
"그릉그릉 깨오오옹~"
"할머니 아니라고? 아가씨라고? 알았어 할망~"
"그르릉 갸오오옹~"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킨 것 같은
거칠지만 가녀린 목소리로
대답하던 할머니 고양이와
며칠 만에 만나니 반가웠어요!
할망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말도 안 되는 대화를 계속 주고받는데
갑자기 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구신지?"
아마도 열린 창문으로
제가 말하는 소리를 다 듣고는
동네 미친 여자인 줄 알고
부랴부랴 나오신 것 같았어요.
저는 너무나 놀라 얼굴이 벌게져
불타는 고구마로 변신해서는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있어서요.."
라고 대답했고
담배를 입에 물던 아저씨는
겸연쩍어하며 눈을 꿈쩍이셨어요.
고양이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인간을
처음 보는 사람의 눈빛이었어요.
남의 집 앞에서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떴어요.
그리고 사라졌던 흑곰 고양이를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에 흑곰 흑곰 부르며 사진을 찍는데
어슬렁어슬렁
돌담 아래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는
몸집이 커다란 고양이를 목격했어요.
"안녕~ 다음에 또 봐 흑곰냥!"
흑곰을 마지막으로 마을을 벗어나
도서관에 가는 길에
그날 내가 만난 고양이들을 떠올리며
입꼬리가 올라가요.
오늘도 고양이를 봐서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옹.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아래는 제가 그린 고양이 그림들입니다.
빵바구니가 올려진 작은 창가에서
노란 고양이가 식빵 굽는 빵집을 그려봤어요.
잉크, 수채물감으로 그린
제주도 서귀포에 자리한 호도제과
아마릴리스 꽃 속에서 책 읽는 소녀 브로닌을
곁에서 바라보는 스모키
(2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뉴질랜드 고양이)
자작나무 패널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림